휘파람은 불 줄 아니?
1841년 12월 8일 돈보스코가 사제가 된 해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대축일날 이었습니다.
돈보스코는 토리노에 있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당 제의방에서 제의를 입고 있을 때였습니다.
15살 정도 되어 보이는 한 아이가 제의방 근처에서 서성거렸습니다.
제의방지기 요셉 코모티는 그 아이가 복사 서러 온 아이인줄 알고, 빨리 복사복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할 줄 모른다고 했습니다.
제의방지기는 복사도 할 줄 모르면서 왜 제의방에 들어왔냐며 촛불을 켤 때 사용하는 긴 막대기로
아이의 머리와 어깨를 마구 때렸습니다.
아이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도망갔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돈보스코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제의방지기에게 따졌습니다.
“지금 도대체 뭐하시는 겁니까?
왜 그렇게 아이를 때리십니까?”
제의방지기도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신부님은 상관하지 마세요.
신부님이 저 아이를 알기나 하십니까?”
돈보스코는 말했습니다.
“알다마다요. 저 아이는 제 친구입니다. 빨리 그 아이를 불러주십시오.”
돈보스코는 쭈볏쭈볏 되돌아온 아이에게 미사는 드렸냐고 물었습니다.
아뇨. 그럼 내가 집전하는 미사에 참여한 뒤 나를 꼭 좀 만나자고, 끝나고 네게 긴히 할 말이 있다고 헀습니다.
미사가 끝난 후 그 유명한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이름이 뭐니?”
“바르톨로메오 가렐리예요,”
“고향은 어디지?”
“아스티예요.”
“아버지는 살아 계시니?”
“아뇨 돌아가셨어요.”
“어머니는?”
“어머니도 돌아가셨어요.”
“몇 살이지?”
“열여섯 살이요.”
“읽고 쓸줄은 아니?”
“아뇨. 전혀.”
“첫영성체는 했니?”
“아직 안했어요.”
“노래할 줄 아니?”
“아니요.”
제가 돈보스코였다면 그 순간 엄청 답답해서 뭐라고 했을 것입니다.
야, 그럼 도대체 너는 할 줄 아는 게 뭐냐?
그러나 돈보스코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이 아이가 할 줄 아는 게 뭘까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이윽고 물었습니다.
“휘파람은 불 줄 아니?”
그제야 아이는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휘파람은 예나 지금이나 뒷골목 아이들의 특기지 않습니까?
유일하게 자신이 할 줄 아는 것을 물어봐 준 돈보스코의 전략에 아이는 마음을 활짝 열었습니다.
돈보스코는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고해성사는 본 적이 있니?” “아주 어렸을 적에요.”
“교리반에는 나가니?”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아요.”
“왜?” “꼬마들은 대답을 잘하는데 전 아무것도 몰라서 챙피해요.”
“그럼 내가 교리를 가르쳐준다면 오겠니? ” “그럼요.”
“이 방에서 해도 기쁘게 오겠니?” “막대기로 때리지만 앉는다면 기꺼이 오겠어요.”
“아무도 너를 못살게 굴지 않을 테니 안심해라. 이제 너는 내 친구니까 오히려 존중해 줄거야.
그럼 우리 언제 교리를 시작할까?” “신부님이 좋으신 때요.”
“오늘 저녁에?” “좋아요.”
“지금 당장이라도?” “그럼요, 당장이라도 좋아요.”
돈보스코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성호경을 그었습니다.
아이는 성호경도 제대로 긋지 못했습니다.
돈보스코는 그렇게 성호경 긋는 법부터 시작해서 간단한 첫 번째 시간 교리를 시작했습니다.
저희 살레시오회는 돈보스코와 바르톨로메오 가렐리와의 만남을 살레시오회가 태동된 순간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 만남 안에 몇 가지 중요한 교육적 요소가 있습니다.
제의방지기는 당대 어른들의 일상적인 태도를 대변합니다.
당시 아이들은 인간 취급도 못 받았습니다.
어른들이 별 생각 없이 때려도 아무 상관없었습니다.
그러나 돈보스코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하느님께서 친히 창조하시고 그 안에 현존하시는 거룩한 존재라고 확신했습니다.
따라서 돈보스코는 굳게 믿었습니다.
소중하고 거룩한 성전인 아이들에게 폭력이나 폭언은 용납이 안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어서 돈보스코는 그 가련한 소년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거듭 아이에게 질문을 던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이를 도와주기 위해서는 아이가 지금 처한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해야 합니다.
돈보스코는 아이를 도와주기 위해, 아이를 더 사랑하기 위해 그가 처한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알고 싶었습니다.
질문을 던지는 과정에서 목소리나 톤도 중요합니다.
무표정, 무뚝뚝이 아니라 세상 친절하고 자상한 아버지처럼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돈보스코는 딱딱한 상담가나 관찰자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친절하고 자상한 아버지로서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거듭되는 질문에도 아이의 대답은 시종일관 없다, 모른다 였습니다.
그 정도라면 보통 어른들은 구제불능이구먼. 상종 못 할 아이구먼 했을 텐데, 돈보스코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아이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가능성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휘파람 불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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