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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31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1-31 조회수 : 47

뮤지션이자, 작가, 그리고 책방 주인이기도 한 요조 씨가 쓴 두 줄이 있습니다.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사람과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 세계는 이렇게 나뉜다.”

 

이 문장에서 오랫동안 머물렀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시간 안에서 이런 모습이 나뉘어 나타났었기 때문입니다. 젊었을 때는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새로움에 관심이 많았고, 모른다는 것에 새로움을 얻으리라는 기대감으로 설레기도 했습니다. 사람과의 새로운 만남에서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서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것에 너무 낯설고 심지어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보다 옛 친구 만나는 것이 더 재미있고 편합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발전의 길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삶을 매번 살아갈 수 있으며, 무엇보다 새로운 만남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주님을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사람이 주님과 가까워질 수 있을까요? 아니면 주님을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이 주님과 가까워질까요? 당연히 후자의 모습이 주님과 가까워지며, 주님과 함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언젠가 어떤 형제님으로부터, “신부님, 열심히 살았고, 또 신앙생활도 나름으로 열심히 했는데 왜 저에게 이렇게 커다란 아픔과 시련이 찾아올까요? 주님이 정말로 계십니까? 그래서 저는 이제 성당에 나가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주님을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모습입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면 아무런 고민이나 걱정 없이 살 수 있을까요? 예수님과 함께하는 사람은 고통이나 시련 없이 살까요? 보통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도 뜻하지 않은 고통과 시련을 보낼 수 있으며, 전지전능하신 주님과 함께하는 사람도 고민이나 걱정 없이 살지 못합니다. 실제로 예수님과 함께하는 제자들은 어떠했을까요?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을 모시고 가는 배에 풍랑이 닥쳤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신앙은 고통이나 시련을 면제받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나 시련 속에서 누구와 함께 있는지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기억하고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마르 4,38)라고 솔직하게 부르짖을 때, 주님의 개입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마르 4,39)라고 말씀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집니다. 아무리 거센 인생의 파도라도 예수님의 말씀 아래 복종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더 다가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이름을 불러주세요. 그 순간 상대는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살아가는 기쁨을 느낍니다(와타나베 가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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