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당신을 버리는 것보다 당신이 먼저 화를 버려라. 그동안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고 우리 자신도 괴롭히는 고통을 안겨준 화, 우리는 좋지도 않은 그 일에 귀한 인생을 얼마나 낭비하고 있는가! 화를 내며 보내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짧은가!”
로마 시대 철학자 세네카의 ‘화에 대하여’ 중의 내용입니다.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글입니다.
긴 삶인 것 같지만 짧은 인생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10대에는 지금의 50대가 과연 올까 싶었습니다. 그러나 50대를 살면서, 10대에서 지금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짧았는지를 비로소 알게 됩니다. 따라서 짧은 인생을 좋은 생각으로 지금 기쁘게 살 수 있어야 합니다. 후회할 시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시간을 행복한 시간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부정의 마음을 벗어 버리고, 긍정의 마음으로 지금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도 그렇습니다. 굳은 믿음을 가지고 긍정의 마음을 살게 되면 모든 것이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나 믿음 없이 부정의 마음을 살게 되면 모든 것이 불평불만이 되고 맙니다. 과연 어떤 삶이 자기를 행복하게 하겠습니까?
어제 복음에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하혈하는 여인을 치유하셨습니다. 이방인 지역과 유다 지역을 오가며 행하신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잘 몰랐지만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을 잘 안다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바로 고향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불신으로 반응합니다.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판단하고, 지독한 편견으로 함께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를 예수님에 대해 “저 사람은 목수로서”(마르 6,3)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는 것에서 알게 됩니다. 목수는 육체노동자를 뜻합니다. 그렇다면 당시 종교적 지도자들은 어떠했을까요? 육체노동을 전혀 하지 않았지요. 따라서 위의 표현은 ‘육체노동자 주제에 무슨 랍비 행세야?’라는 계급적 편견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요셉의 아들’이 아닌,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요셉이 사망한 상태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이 역시 비하의 발언입니다.
‘내가 다 안다’라는 식의 교만은 하느님의 새로운 활동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믿음을 가질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이렇게 믿음 없음의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마르 6,5)라고 복음은 전합니다. 하느님의 능력은 인간의 믿음과 만나야지만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은 어떤가요? 짧다고 할 수 있는 지금의 삶을 믿음 없이 부정의 마음으로 힘들게 사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의 명언: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든 신경쓰지 마라. 당신이 할 일은 당신의 삶을 사는 것이다(에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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