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7,24-30
우리의 기도가 대화가 아닌 독백이 되어버리는 이유
어느 열심한 자매님이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제발 저희 남편 좀 바꿔주세요.
술 좀 끊고, 제 말 좀 잘 듣게 해주세요!" 그러자 하느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그래, 알았다. 내가 네 남편을 아주 완벽한 남자로 바꿔주마.
대신 조건이 하나 있다.
네가 먼저 성녀가 되어야 한다." 자매님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주님, 그냥 제가 참고 살게요.
성녀 되는 건 너무 힘들어서요!"
우리는 기도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 타인을 바꾸려 합니다.
하지만 기도의 진짜 목적은 '나'를 바꾸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비대해진 자아를 주님 앞에서 0으로 줄여나가는 과정입니다.
오늘 복음의 시로페니키아 여인은 바로 이 '작아짐의 기술'을 마스터한 분이었습니다.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라는 그녀의 고백은 굴욕이 아니라,
은총을 주시기 위해 스스로 작아지신 예수님의 주파수에 자신의 주파수를 맞춘 영적 공명이었습니다.
그녀는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한없이 작아질 때, 나를 위해 한없이 작아지신 하느님의 전능이 내 안으로 흘러들어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기도를 하면 할수록 자꾸 커지려고 한다는 데 있습니다.
소위 '영적 비만'입니다.
기도를 많이 한 자신이 대견해서 고개를 쳐듭니다.
성 파코미오의 성인전 『Vita di Pacomio』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젊은 수도자가 남들보다 훨씬 긴 시간 고행하며 자신의 거룩함을 은근히 과시했습니다. 그러자 파코미오 성인은 그를 불러 이렇게 꾸짖었습니다.
"그대의 기도는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대 자신이라는 바구니 속에 차곡차곡 쌓여
썩어가고 있구려. 그대가 작아지지 않는다면 그 모든 고행은 악마를 기쁘게 할 뿐입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제자 주니페로 형제도 비슷한 유혹에 빠졌습니다.
『잔꽃송이』에 따르면, 그는 스스로를 낮추려 애썼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내가 얼마나 겸손한가'를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교묘한 유혹이 꿈틀댔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형제여, 자기를 비우는 기도는 남이 나를 발로 밟아도 그 발에 향기를 남기는 꽃과 같아야지,
내가 낮다고 외치는 종소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도의 꾸준함이 자아를 뽐내는 전시장이 된다면,
그것은 하느님과의 대화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한 찬가일 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기도할 때 어디에 계신 예수님을 만나려 합니까?
화려한 예루살렘 입성이나 병자를 고치시는 영광스러운 예수님만을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유다 이스카리옷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통해 자신의 야망을 키우려다 망했습니다.
기도는 항상 골고타의 예수님을 만나러 가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곳은 모든 자존심이 발가벗겨지고, 하느님의 자비만이 발가벗겨진 채 매달려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 '골고타의 기도'를 온몸으로 살아낸 분이 바로 베트남의 반 투안 추기경입니다.
13년의 감옥 생활을 견뎌낸 그가 생애 마지막에 도착한 곳은 로마 제멜리 병원이었습니다.
한때 나라를 호령하던 목자였으나, 이제는 암세포에 정복당해 기저귀를 찬 채 대소변조차
가리지 못하는 초라한 노인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간병인이 침대 시트를 갈며 퉁명스럽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할아버지! 또 실례를 하면 어떡해요! 제발 말 좀 하세요!" 추기경은 그 모욕적인 꾸중 앞에서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추기경이다"라는 자존심도, "아파서 어쩔 수 없었다"라는 논리도 내려놓았습니다.
그는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속으로 읊조렸습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당신은 저에게서 마지막 남은 인간적 품위마저 가져가시는군요.
이제 저는 당신 앞에 진정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었습니다."
수술대로 향하는 카트 위에서 알몸으로 누워 의료진의 차가운 시선을 견딜 때, 그는 비로소
십자가 위에서 알몸으로 못 박히신 예수님의 눈과 마주쳤습니다.
추기경은 숨을 몰아쉬며 마지막 기도를 바쳤습니다.
"예수님, 당신은 십자가에서 제로(0)가 되셨습니다. 당신이 0이 되셨기에 하느님의 전능이 세상을 구원했습니다.
이제 저도 0이 되었습니다.
제가 0이 되었을 때, 비로소 당신이 나의 전부(All)가 되셨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완성입니다.
투안 추기경은 기도를 통해 자아라는 견고한 성벽을 완전히 허물고, 주님 앞에 한 마리 강아지처럼 작아졌습니다.
그가 십자가의 예수님을 만나 자신을 제로로 만들었을 때, 골고타의 은총은 비로소 그의 영혼을 온전히 덮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기도는 나를 증명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기도는 골고타로 향하는 길이며, 나를 밟는 사람에게도 향기를 묻혀줄 수 있을 만큼 철저히 부서지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작아질 수만 있다면 주님은 어떤 은총이라도 허락하실 것입니다.
성녀 소화 데레사는 『한 영혼의 역사』에서 자신이 너무나 작고 약해서 성덕의 높은 계단을
오를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기도를 통해 거창한 일을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하느님이라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기 위해 스스로를 아주 작은 어린아이로 만들었습니다.
『Petite Voie』는 선포합니다.
"내가 작아질수록 하느님의 팔은 나를 더 높이 들어 올리신다."
오늘 하루, 기도의 양을 채우려 애쓰기보다 골고타의 십자가 아래서 내 안의 자존심을
한 조각 깎아내는 일에 집중해 봅시다. 우리가 기꺼이 주님 앞의 강아지가 될 때, 주님은 당신 식탁의 풍성한 빵을 우리에게 내어주실 것입니다.
내가 사라진 그 자리가 바로 은총이 머무는 자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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