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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13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2-13 조회수 : 136

우리 공동체엔 예수님께서 함께 계신가?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입니다.

할아버지가 보기에 할머니가 요즘 통 못 알아듣는 것 같아 걱정이 됐습니다.

그래서 뒤에서 몰래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죠. 거실 끝에서 불렀습니다.

"여보, 오늘 저녁 메뉴가 뭐야?" 대답이 없습니다. 조금 더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여보, 오늘 저녁 뭐야?" 역시 조용합니다. 할아버지는 이제 할머니 귀 바로 뒤까지 다가가 소리쳤습니다.

"여보! 오늘 저녁 메뉴가 뭐냐고!" 그러자 할머니가 버럭 화를 내며 돌아섰습니다.

"영감님! 벌써 다섯 번째 닭볶음탕이라고 말했잖아요!" 

 

우리는 남이 못 듣는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귀가 막힌 쪽은 나 자신일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귀먹고 말더듬는 이를 고쳐주십니다.

단순히 신체적인 치유가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를 다시 듣게 하시고, 다시 말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무엇을 듣고 무엇을 말해야 할까요?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우리는 영적 귀머거리입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그들은 뱀의 감언이설은 기가 막히게 들으면서 하느님의 금령은 못 들은 체했습니다.

죄를 짓고 나서 "너 어디 있느냐?" 하고 찾으시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피해 덤불 속에 숨었습니다.

하느님의 목소리가 무서워진 것입니다.

이것이 귀가 막힌 상태입니다.

입이 막힌 것은 또 어떻습니까?

자신의 나약함과 죄를 고백하지 못하고 "저 여자 때문에", "저 뱀 때문에" 라며 남 탓만 늘어놓는 것, 그것이 바로 영적 벙어리의 전형적인 증상입니다.

이런 귀머거리와 벙어리들이 모이면 공동체는 지옥으로 변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17세기 프랑스의 포르 로아얄(Port-Royal) 수도원입니다.

이곳 수녀들은 엄격한 금욕과 지성으로 당대 최고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얀세니즘'이라는 엄격한 교리에 사로잡혀, 교회의 권고나 교황의 가르침조차 듣지 않았습니다.

당시 파리 대주교였던 페레픽스는 그들을 방문한 뒤 "그들은 천사처럼 순결하지만, 악마처럼 오만하다" 라고 탄식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보다 자신들이 세운 완벽한 논리라는 벽 뒤에 숨었습니다.

한번은 수도원에 큰 위기가 닥쳐 서로의 도움이 절실했을 때조차, 수녀들은 "내가 당신에게 상처를 주어 미안합니다"라고 고백하며 화해하기보다, "누가 더 교리에 충실한가"를

따지며 서로를 정죄하는 데 열을 올렸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라는 소리에 귀를 닫으니,

입에서는 오직 타인을 향한 칼날 같은 비판만 흘러나왔습니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의로움이라는 벽돌로 창문 하나 없는 캄캄한 감옥을 짓고 있었던 것입니다. 

 

거짓말과 위선은 영혼의 벽돌과 같습니다.

하나씩 쌓을 때는 견고해 보이지만, 어느새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방에 갇히게 됩니다.

내가 더러워도 더러운 줄 모르는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진정으로 예수님과 함께 있는 공동체는 이 벽을 깨부수고 서로의 민낯을 드러냅니다. 

 

이탈리아의 엘비라 수녀님이 세운 체나콜로 공동체(Comunità Cenacolo)는 마약과 절망에 빠진 이들의 피난처입니다.

이곳의 치유는 '진실의 시간(Revisione di Vita)'에서 시작됩니다.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려 애쓰던 안드레아라는 청년은 어느 날 동료들의 물건에 손을 댔습니다.

예전 같으면 숨기고 거짓말을 했겠지만, 그는 떨리는 다리로 형제들 앞에 섰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어제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너희의 것을 훔쳤다.

내 안의 어둠이 다시 나를 집어삼키려 한다.

제발 나를 위해 기도해다오." 

 

그 순간 공동체에는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고, 곧이어 동료들이 다가와 안드레아를 안아주었습니다.

이탈리아어로 이 시간은 『La Risurrezione』(부활)이라 불립니다.

죄를 입 밖으로 내뱉어 어둠을 드러내는 순간, 막혔던 영적 귀가 뚫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라는 하느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분명히 권고합니다.

"여러분의 죄를 서로 고백하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야고보 5,16).

고해성사가 주님과의 수직적인 화해라면, 형제들과의 죄 고백은 우리 공동체를 살리는 수평적인 호흡입니다.

거짓말은 벽돌과 같아서 쌓을수록 영혼을 가두지만, 고백은 그 벽을 허물고 빛을 들여보내는 유일한 통로가 됩니다. 

 

결론으로 시리아의 교부 성 에프렘의 영성 깊은 묵상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귀머거리의 혀에 침을 바르시고 귀에 손가락을 넣으신 사건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신성이라는 손가락으로 우리 영혼의 빗장을 만지셨다.

그분이 '에파타'라고 외치신 것은, 인간이 죄로 인해 닫아걸었던 마음의 문을 안쪽이 아니라 바깥쪽에서 직접 열어젖히신 사랑의 폭력이다." 

 

이제 입을 열어 나의 더러움과 나약함을 솔직히 고백합시다.

그런 분위기의 공동체에 머뭅시다.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그것에 비추어 나의 잘못을 고백할 수 있는 공동체라면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심이 확실하고, 가장 확실한 구원의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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