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게시판 > 보기

오늘의 묵상

2월 1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2-18 조회수 : 177

사순의 목적: 눈에서 비늘이 떨어짐  
 
 
교우 여러분, 사순 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머리에 재를 얹으며 영적인 개안 수술을 받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어느 성격 급한 남자가 새로 산 슈퍼카를 타고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대시보드에 빨간 경고등이 들어오고 보닛 사이로 검은 연기가 풀풀 나기
시작했습니다. 
당황한 남자는 차를 세우고 엔진을 점검하는 대신, 차 안의 온도를 낮추려고 에어컨을 가장 강하게 틀고 창문을 다 열었습니다.
"아니, 차가 왜 이렇게 뜨거운 거야? 에어컨을 18도로 맞추면 좀 식겠지!"
그는 시속 100km로 계속 달렸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5분 뒤, 차는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화려한 불꽃놀이를 하며 폭발해버렸습니다. 
엔진 오일이 샌다는 근본 원인은 무시한 채, 겉으로 느껴지는 열기만 식히려고 애쓰다 결국 전 재산을 날려버린 것입니다. 
 
사실 우리 신앙인의 모습이 이 남자와 똑같습니다. 
우리는 인생에 고통의 연기가 나고 경고등이
들어오면, 그 원인인 삼구(三仇), 즉 내 안의 탐욕과 정욕과 교만을 다스릴 생각은 하지 않고
겉으로 보이는 문제만 해결하려 듭니다. 
하느님께 "돈 더 주시고, 남들보다 잘나게 해주시고, 내 몸 편하게 해주시면 행복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은, 폭발 직전의 엔진에 에어컨을 트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사순 시기마다 작심삼일로 끝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내 안에 있는 그 삼구가 나의 눈을 가려 내 곁에 계신 하느님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독약'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하느님을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삼구는 우리를 눈뜬 소경으로 만듭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어떤 남편이 아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바칠 각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남편의 그 절절한 눈빛과 사랑을 전혀 보지 못합니다.
오직 돈에 눈이 멀어 남편이 가져오는 월급 봉투의 두께만 확인하고, 계속해서 "나를 사랑한다면 명품 가방이나 아파트로 증명해봐!"라고 표징만을 요구합니다.
이 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그 어마어마한 행복을 앞에 두고도
지옥을 삽니다. 
탐욕이라는 비계가 그녀의 눈을 가려 남편의 영혼을 보지 못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바리사이적 종교 행태가 낳은 폐해는 실로 무섭습니다.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세르게이 신부』를
보십시오. 
주인공 스테판은 전도유망한 장교였으나 약혼녀의 배신으로 수도원에 들어가 세르게이 신부가 됩니다. 
그는 누구보다 엄격하게 단식하고 기도하며 성인이라는 칭송을 듣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작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도사린 '인정받고 싶은 교만'이라는 마귀와 '들끓는 성욕'이라는 육신의 원인을 직시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방탕한 여인이 유혹하러 오자 그는 도끼로 손가락을 잘라 고통으로 유혹을 견디며
외쳤습니다. 
"보시오! 나는 이 육체의 고통으로 당신의 유혹을 이겼소!" 
사람들은 이 소식에 열광했고 세르게이는 속으로 흐뭇해했습니다. 
'역시 나는 다르다. 나는 이 정도로 거룩하다.'
그는 하느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고행을 잘하는 자신을 보며 행복해했습니다. 
 
결국 수년 뒤, 자기를 찾아온 불쌍한 소녀를 치유해주려다 들끓는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를 범해버린 그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습니다. 
"나는 성자가 아니라 짐승이었다!"
원인을 모르는 고행은 영적 백내장을 더 악화시킬 뿐입니다.
오늘 복음의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보고도 끊임없이 표징을 요구한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삼구로 가득 차서, 눈앞에 계신 '사랑 그 자체'이신 하느님을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기도와 자선과 단식을 해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 눈을 가린 삼구를 제거하고
하느님의 현존이라는 진짜 행복을 얻기 위한 영적 피트니스이기 때문입니다. 
 
이 원인을 절실히 깨달아 성인이 된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16세기의 성 프랑수아 보르지아입니다.
그는 스페인의 고귀한 공작이었고 권력의 정점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평생 흠모했던 아름다운 이사벨라 왕비가 서거했을 때 관을 열고 그 시신을 마주했습니다.
며칠 만에 썩어 문드러져 악취를 풍기는 왕비의 얼굴을 본 순간, 그는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평생을 바쳐 추구했던 육체의 아름다움과 세속의 영광이 이토록 허무한 것이었구나!
나는 이제 결코 썩지 않을 주님의 아름다움만을 보겠다."
그는 삼구라는 독배를 쏟아버림으로써 영원한 임금님의 얼굴을 볼 눈을 얻었습니다. 
 
또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결정적인 회개 순간을 보십시오.
토마소 다 첼라노가 쓴 『생애』(Vita Prima)에 따르면, 젊은 시절 프란치스코는 귀족적인
자만심(교만)이 강했고 아름다운 옷과 향연(육신)을 즐기던 이였습니다.
특히 그는 나병 환자를 극도로 혐오하여 그들을 보면 코를 막고 멀리 돌아갔습니다.
삼구라는 두꺼운 백내장이 그의 눈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에서 한 나병 환자를 마주쳤습니다. 
예전 같으면 도망갔겠지만, 그는 말에서 내려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돈을 건네주는 '자선'을 베풀었고, 혐오감을 이겨내는 '단식'의 정신으로 그의 썩어가는 손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하느님께 '기도'하며 자신을 완전히 낮추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흉측한 고름과 악취로 가득했던 환자의 얼굴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서 광채가 나는 만왕의 임금님, 예수 그리스도를 본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는 나중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예전에 나에게 그토록 쓰게 느껴졌던 것이,
이제는 영혼과 육신의 감미로움으로 변했다." 삼구라는 장막을 걷어내자, 이미 그곳에 계셨던 하느님의 눈부신 행복을 발견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사순 시기는 하느님께 점수를 따는 기간이 아닙니다. 
내 눈을 가리고 있는 삼구라는 암세포를 도려내어 주님을 다시 보게 되는 치유의 기간입니다.
우리가 성체성사를 모시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이 독을 이길 수 없기에, 주님의 생명을 내 안에 받아들여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위함입니다. 
 
이번 사순 시기, 그냥 남들이 하니까 하는 숙제는 끝냅시다. 
대신 내 안의 삼구를 똑똑히 대면하십시오.
"내가 이 돈 때문에 주님을 못 보고 있구나! 
내가 이 자존심 때문에 내 곁의 천사들을 못 보고 지옥을 살고 있구나!" 
이 원인을 절실히 깨달아야만 우리는 비로소 기쁘게 굶고, 기쁘게 나누고, 기쁘게 무릎 꿇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머리에 얹는 재는 "너는 죽을 존재이니 썩어질 것에 눈멀지 마라"는 하느님의 간절한 충고입니다.
내가 사라진 그 제로의 자리에 주님의 눈부신 얼굴이 비치는 은총의 사순 시기가 되시길 빕니다.
아멘.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