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9,14-15
배가 부르면 눈이 감긴다
교우 여러분, 사순 시기의 첫 번째 금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느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마태 9,15)
오늘 저는 이 단식이 어떻게 우리에게 잃어버린 신랑, 즉 우리 주님을 되찾아 주는지에 대해 여러분과 깊이 나누고 싶습니다.
사실 저에게도 단식에 얽힌 아주 특별한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신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그때는 의욕만 앞서서 남들이 안 하는 단식 기도를 해보겠다고 결심했죠.
한 사흘을 굶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흘쯤 굶으니까 정말 겸손해지더군요.
아니,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계단을 올라가는데 다리가 후들거리고, 신학 책을 읽으려 해도 글자가 라면 면발처럼 보이더라고요.
그전까지 저는 제가 아주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신학 공부도 잘할 것 같고, 거룩한 사제가 금방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밥 몇 끼 굶었다고 이렇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다니요.
그 지독한 무력감 속에서 저는 처음으로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교만은 눈을 가려 하느님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성 바실리오(St. Basilius Magnus) 교부께서는
『단식에 관하여』라는 설교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단식은 낙원에서 제정된 법이다.
아담이 단식하지 않았기에, 즉 금지된 나무의 열매를 먹었기에 낙원에서 쫓겨났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을 볼 수 없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느님처럼 되고 싶다는, 즉 자아가 배불러지고 싶다는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배가 부르면 영혼의 감각이 무뎌집니다.
당연히 육체적인 욕망도 사라지고, 소유욕도 없어지니 삼구(三仇, 세속·육신·마귀)가 다 줄어드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래서 단식이 좋은 겁니다.
자, 그럼 왜 배가 부르면 진리나 아름다움, 선함을 볼 수 있는 눈이 멀어버리는지, 역사의 생생한 사례를 통해 찾아보겠습니다.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5세(Karl V)는 유럽 역사상 가장 광활한 영토를 다스린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그러나 지독한 식탐 때문에 늘 통풍과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그는 매끼 20가지 이상의 고기 요리를 먹었다고 전해집니다.
그가 왕관을 내려놓고 스페인의 유스테 수도원으로 은퇴했을 때, 그는 이미 비대해진 몸과 무뎌진 정신으로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역사학자 윌리엄 로버트슨(William Robertson)의 기록에 따르면, 은퇴 후 그는 수도원에서 수십 개의 태엽 시계들을 모아놓고 시간을 똑같이 맞추는 작업에 집착했습니다.
하지만 시계들은 제각각 움직였죠. 카를 5세는 시계의 시간을 맞추려 애쓰다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이 기계 시계들도 내 마음대로 시간을 맞출 수가 없는데, 내가 어떻게 그 수많은 민족의 종교와 사상을 내 마음대로 맞추려 했단 말인가!"
그가 권력과 음식에 배불러 있을 때는 자신의 오만함과 종교개혁의 본질을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수도원의 엄격한 식단과 절제 속에서 몸의 비계가 걷히자, 비로소 자신이 하느님의 자리를
찬탈하려 했던 가련한 죄인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프랑스의 성자, 아르스의 본당 신부 요한 비안네(Jean-Marie Vianney) 성인은 하루에 감자 한두 알로 끼니를 때우며 지독한 단식을 이어갔습니다.
사람들은 성인을 '뼈만 남은 성자'라고 불렀죠.
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배가 부르면 영혼이 잠듭니다.
하지만 배가 고프면 영혼이 하느님의 세밀한 속삭임을 듣기 위해 깨어납니다."
성인이 단식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은총은 사람의 영혼 깊은 곳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었습니다.
고해소에 들어온 신자가 죄를 숨기면 성인은 "형제님, 10년 전 그 나무 밑에서 저지른 일을 왜 숨기십니까?" 라고 정확히 짚어냈습니다.
육체의 굶주림이 영혼의 망막을 맑게 닦아주어, 인간의 위선 뒤에 숨은 본질을 보게 만든 것입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St. Joannes Chrysostomus) 교부의 말씀처럼 "단식은 영혼의 음식이며, 기도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임을 몸소 증명한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단식은 단순히 고통을 자처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단식은 우리 삶의 노이즈(Noise)를 제거하는 영적 수술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것들로 너무 시끄럽고 배부를 때,
우리 곁에 계신 '신랑' 예수님의 목소리는 묻혀버립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이 왜 단식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예수님은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지금 신랑을 빼앗긴 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자존심이 너무 배불러서, 내 탐욕이 너무 가득 차서, 정작 내 영혼의 신랑이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닙니까?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 교부께서는 이렇게 권고하십니다.
"단식은 영혼을 정화하고, 정신을 고양하며, 육신을 영혼에 복종시킨다."
이번 사순 시기, 단식을 통해 우리 안의 '교만의 비계'를 좀 떼어냅시다.
배가 조금 고플 때 비로소 들리는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시다.
단식이 잃었던 신랑을 되찾아 줄 것입니다. 여러분의 비워진 그 마음자리로, 부활의 기쁨을
가득 안고 오실 신랑 예수님을 맞이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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