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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23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2-23 조회수 : 191

마태오 25,31-46 

 

성체 제대로 영하는 법: 봉성체 나가는 마음으로 

 

 

교우 여러분, 사순 시기의 첫 주간을 보내는 오늘 우리는 최후의 심판 복음을 듣습니다.

오늘 복음의 핵심은 명확합니다.

천국행 티켓의 검수원은 베드로 사도가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이 세상에서 마주친 보잘것없고 밉살스러운 형제들입니다.

주님은 심판 날에 "네가 얼마나 거룩한 표정으로 성체를 영했느냐?"고 묻지 않으십니다.

대신 "너는 성당 문밖에서 떨고 있는 나에게 얼마나 거룩한 미소를 보냈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왜 성체를 모시면서도 사람을 사랑하지 못할까요?

그것은 내 손바닥 위의 성체와 길 위의 형제가

같은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논리적으로만 알 뿐, 영성적으로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의 한 전설에 따르면, 아주 부유하고 열심한 귀족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매일 금으로 장식된 미사 책을 들고 가장 앞자리에서 성체를 모셨습니다.

하루는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성당 문앞에 굶주린 노인이 손을 내밀었습니다.

부인은 "지금 내가 주님을 모시고 거룩한 침묵 중에 있으니까 이 행복을 깨지 말아주세요"라며

노인을 밀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날 밤 부인의 꿈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부인이 "주님, 제가 오늘 얼마나 정성껏 당신을 모셨는지 아시지요?"라고 묻자, 주님은 피 흘리는 모습으로 답하셨습니다.

"너는 성당 안에서 나를 입으로 받아 모셨지만, 성당 밖에서는 나를 길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네가 모신 것은 내가 아니라 그저 차가운 밀떡뿐이었다." 

 

이것은 성체를 영한 사람의 모습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인간이 되셨고, 그 인간이 우리를 위해

밀떡까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존재의 원인입니다.

그분을 사랑할수록 우리 눈에는 신비로운 시력이 생깁니다.

아무리 미운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라는 존재를 빚어낸 거푸집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죠. 

 

이탈리아의 위대한 성녀, 시에나의 가타리나의 일화입니다.

성녀는 자신에게 침을 뱉고 저주를 퍼붓던 고약한 나병 환자 테페 할머니의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냈습니다.

사람들은 구역질 난다고 고개를 돌렸지만, 성녀는 그 피고름 속에서 성혈의 맛을 보았습니다.

왜일까요? 성녀에게는 그 할머니가 단순한 환자가 아니라, 주님이 당신을 내어주어 거룩하게 만들고 싶어 하시는 '밀떡'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도 잊지 못할 체험이 있습니다.

첫 본당 신부 시절, 어느 요양원 시설에서 팔다리가 묶인 채 온갖 욕설을 내뱉는 한 자매님께 봉성체를 가야 했습니다.

그분의 이빨은 마치 짐승처럼 뾰족하게 갈려 있었고, 눈빛은 마귀처럼 섬뜩했습니다.

처음엔 성체를 모시는 것 같더니, 갑자기 제 얼굴 앞에 성체를 뱉어버렸습니다.

땅에 떨어진 성체에는 입안에 있던 고춧가루까지 묻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이 뱉은 침이 묻은 성체를 제가 모시며, 예수님이 저에게 들어오기를 바라시는 것이나

그 자매에게 들어가 거룩하게 만들려는 것이나 다를 게 없음을 알았습니다.

왜 마귀로 변해버린 유다에게까지 성체를 영해주셨을까?

그게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고 싶은 그분 마음이었습니다.

성체를 모시고 있으면 신자들에게서 그 성체를 모실 자격을 조금이라도 찾아내려 합니다.

저는 그 자매에게서 성체를 모실 자격이 없다고 여겼지만,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몸!’ 하는 순간에 갑자기 옛 기억이 나서 ‘아멘!’이라고 하는 것을 찾아내려 했습니다.

그래서 성체를 영해드리려 했습니다.  

 

만약 제가 성체가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그 사람에게까지 들어가 그를 거룩하게 하고 싶은 예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없고, 그냥 치매 걸려 미쳐버린 할머니로 치부하고 지나쳤을 것입니다. 

결국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이유는 내 안에 그 사람에게 내어줄 성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제만 봉성체를 하는 게 아닙니다.

성체를 영한 모든 그리스도인은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미운 사람,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주님을 모셔다드리는 '움직이는 감실'이 되어야 합니다. 

 

최근 프랑스 뉴스에 실린 파리의 한 청년 이야기는 성체성사의 완성을 보여줍니다.

매일 아침 성체조배를 하던 이 청년은 미사가 끝나면 성당 문앞 노숙자에게 자기 점심 도시락을

건넸습니다.

누군가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묻자 청년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방금 제 입안으로 들어오신 예수님이, 저분 입으로도 들어가고 싶어 하시는 게 느껴져서요.

제 입만 예수님을 모시고 저분 입은 굶주리게 한다면, 그건 예수님을 반토막 내는 거잖아요."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손바닥 위에 성체가 놓일 때 가만히 고백하십시오.

"주님, 저는 오늘 당신을 모시고 제가 제일 미워하는 그 사람에게 봉성체를 가겠습니다.

제 안에 계신 당신의 사랑으로 그 사람의 형상 안에 찍힌 당신의 얼굴을 보게 하소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397항은 분명히 가르칩니다.

『성체성사는 우리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헌신하게 한다.

참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으려면, 그리스도의 형제들 특히 가장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뵈어야 한다.』 

 

성체를 영하는 신자들이라면, 당연히 '봉성체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 안에 모신 가장 귀중한 보물을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에게 내어줄 줄 아는 사람,

그 사람이 진짜 성체를 모신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마음을 지닌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밀가루만 모시지 말고 그분 마음을 모시고 세상으로 나아가십시오.

이것만이 진정한 성체성사입니다.

그리고 봉성체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그때 비로소 여러분은 천국행 티켓의 검수원인

'가장 작은 이'들로부터 합격 도장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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