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17,1-9
기도의 실패는 폭력으로 드러나고, 기도의 성공은 순종으로 드러납니다
교우 여러분, 사순 제2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당신의 얼굴을 해처럼 빛나게 바꾸시는 영광스러운 변모를 보여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왜 굳이 산에 올라가셨을까요?
그리고 그곳에서 왜 하필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셨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산은 기도의 장소이고, 기도는 존재의 권위를 수혈받는 시간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게 뭡니까? 내 말이 안 먹힌다는 겁니다.
자녀에게 아무리 좋은 소리를 해도 듣지 않고, 공동체에서 아무리 진리를 외쳐도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목소리를 높이고, 화를 내고, 심하면 폭언과 강압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거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내 말을 듣게 하려고 폭력을 쓰는 순간, 그것은 당신의 기도가 산 위에서 완전히 실패했다는 가장 확실한 성적표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권위는 목소리의 크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의 산에서 만난 진리와 은총의 합작품입니다. 오늘 예수님 곁에 선 모세는 하느님의 진리인 법을 상징하고, 엘리야는 뜨거운 하느님의 은총인 불을 상징합니다.
기도가 잘 되었다는 것은 내 안에 진리의 설계도가 그려지고, 그것을 밀어붙일 은총의 엔진이 가동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두 가지를 가진 사람의 말에는 칼날 같은 권위가 서립니다.
첫 번째로 진리의 권위를 보십시오.
진리를 발견한 사람은 소리 지르지 않습니다.
그저 진리 자체가 가진 무게로 상대를 압도합니다.
이탈리아의 위대한 성녀, 시에나의 가타리나(Santa Caterina da Siena)를 보십시오.
그녀는 정식 교육도 받지 못한 일자무식에 가까운 여성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매일 기도의 산에서 진리의 모세를
만났습니다.
당시 교황 그레고리오 11세가 프랑스 아비뇽에 머물며 로마로 돌아오지 않자, 가타리나는 교황에게 편지를 쓰고 직접 찾아갑니다.
보잘것 없는 여인이 당대 최고 권력자인 교황 앞에서 뭐라고 했을까요?
소리를 질렀을까요?
아닙니다.
그녀는 하느님께 받은 진리를 아주 명료하게 선포했습니다.
"교황님, 당신이 있어야 할 자리는 여기가 아니라 로마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지 마십시오."
이 서슬 퍼런 진리 앞에 유럽의 모든 군주를 호령하던 교황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순종하며
로마로 돌아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로 얻은 진리의 권위입니다.
내 말이 먹히지 않는 이유는 내 말이 틀려서가 아니라, 기도 안에서 진리의 확신을 수혈받지 못해 내 말에 무게가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은총의 권위입니다. 은총은 따뜻한 빛입니다. 이탈리아어로는 그라치아(Grazia)라고 하죠.
이 은총을 가득 입은 사람은 존재 자체에서 풍겨 나오는 빛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무장 해제시킵니다.
인도로 떠났던 위대한 선교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San Francisco Javier)의 일화를 보십시오.
그는 처음 보는 이민족들 사이에서 복음을 전해야 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그를 따랐습니다. 왜일까요?
그가 기도를 마치고 산 아래로 내려왔을 때, 그의 얼굴에서는 은총의 빛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포르투갈의 항해사들이 기록한 바에 따르면, 하비에르 신부가 지나가기만 해도 거친 선원들이
욕설을 멈추고 무릎을 꿇었다고 합니다.
그가 소리를 질렀을까요? 아닙니다.
엘리야처럼 하느님의 은총의 불을 가득 머금은 그의 존재 자체가 사람들의 영혼을 녹여버린 것입니다.
기도의 실패는 차가운 폭력으로 드러나지만, 기도의 성공은 따뜻한 은총의 빛으로 드러납니다.
반면, 세속적인 통제는 어떻습니까?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군주 체사레 보르자(Cesare Borgia)는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찬양할 만큼 철저한 공포 정치를 펼쳤습니다.
그는 반대파를 돈으로 매수하거나, 약점을 잡아 협박하고,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 부하의 몸을
두 토막 내어 광장에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공포 때문에 그에게 굴복했습니다.
하지만 결과가 어땠습니까?
그가 병석에 눕자마자, 돈으로 샀던 충성은 흩어졌고 약점 잡혔던 이들은 복수의 칼을 갈았습니다.
폭력과 돈으로 세운 권위는 그 조건이 사라지는 순간 즉시 반역으로 바뀝니다.
그러나 기도를 통한 권위는 다릅니다.
이탈리아 구비오(Gubbio) 마을에 사람을 잡아먹는 흉폭한 늑대가 나타났을 때를 기억하십시오.
마을 사람들은 칼과 창을 들고 늑대를 죽이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때 성 프란치스코가 나섰습니다.
그는 무기 대신 기도의 산에서 얻은 '하느님 자녀의 권위'를 들고 늑대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는 늑대를 "늑대 형제여"라고 불렀습니다.
늑대는 아무런 위협이나 보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인의 발치에 엎드려 온순한 양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성공입니다.
아무런 보상이나 위협 없이도 영혼이 스스로 움직이게 만드는 하늘의 통치력 말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하루에 딱 15분만이라도 모든 세상의 소음을 끄고 '침묵의 산'에 오르십시오.
거기서 내 불평을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모세와 엘리야처럼 하느님의 진리(말씀)와 은총(성체)을
가만히 바라보십시오.
기도가 잘 되었다면 여러분은 산을 내려올 때(기도를 마치고 방을 나올 때), 누군가에게 화를 내거나 조건을 걸어 통제하고 싶은 욕구가 사라진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대신 여러분의 눈빛에는 두려움 없는 평화가, 입술에는 진리의 무게가 실릴 것입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교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들의 말이 사람들의 영혼에 닿지 않는 이유는, 그대들이 먼저 하느님의 발치에 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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