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2주간 수요일]
복음: 마태 20,17-28: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며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다시금 예고하시는 장면을 본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여전히 인간적인 권력과 영광의 자리를 꿈꾸고 있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아들들을 위하여 예수님의 나라에서 좌우의 영광스러운 자리를 청하는 것은, 제자들의 내적 갈망이 여전히 세속적 기대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 준다.
예수님께서는 이 청을 거절하지 않으시면서, 오히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22절)라고 물으신다. 여기서 “잔”은 수난을, “세례”는 죽음을 가리킨다. 예수께서 올리브 동산에서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마태 26,39)라고 기도하셨던 바로 그 고통의 잔을 말한다. 제자들은 그 깊이를 알지 못했기에 “할 수 있습니다.”(22절)라고 대답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의 미성숙을 꾸짖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이 결국 순교의 길을 걷게 될 것을 예언하신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주님께서는 영광의 자리를 주시는 분이시지만, 그 길은 먼저 고난의 잔을 마시는 것이다. 그분의 제자가 되려는 이는 반드시 그분의 수난을 나누어야 한다.”(Enarrationes in Psalmos 75,11)
사실 제자들 모두는 인간적 욕망을 따라 영광을 원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26절)라고 하시며 제자직을 가르치신다. 권위란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섬김으로 실현된다는 것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를 이렇게 해석한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제자는 으뜸이 되려는 자가 아니라, 종이 되려는 자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왕국이 땅의 왕국과 다르기 때문이다. 땅의 왕국은 지배와 권력을 의미하지만, 하늘 나라의 왕국은 사랑과 봉사를 뜻한다.”(Homiliae in Matthaeum 65,2) 교회도 이 가르침을 이어받아, 교황을 비롯한 모든 교회 지도자의 본질적 직무를 “섬김의 직무”로 이해한다. 교회 헌장도 이렇게 가르친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하늘의 스승께서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음을 기억하면서, 형제들을 위하여 서로 봉사해야 한다.”(37항)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묻고 계신다.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실 수 있느냐?”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속적 안락이나 영광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따르는 길이다. 그러나 그 길 끝에는 진정한 부활과 영광이 기다리고 있다. 사순 시기, 우리는 섬김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참된 권위는 섬김과 봉사에서 오며, 참된 제자직은 주님의 잔을 함께 마시는 데서 드러난다. 우리가 세상의 방식대로 크기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처럼 낮아져 형제들을 섬길 때, 우리는 참된 제자가 되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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