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3주간 월요일]
복음: 루카 4,24-30: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고향 나자렛에서 거부당하신 장면을 보여 준다. 예수님은 당신이 자란 곳에서 말씀을 선포하시지만, 고향 사람들은 그분을 인정하지 않는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24절) 이 말씀은 예수님만의 체험이 아니라, 하느님의 진리를 선포하는 모든 이가 겪는 보편적 운명이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은총과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셨다. 그러나 고향 사람들은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22절)라며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간적인 선입견과 편견이 그들의 눈과 귀를 가렸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 고향에서 멸시받은 것은 너무 익숙했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판단이 하느님을 아는 지식을 가로막았다.”(Homiliae in Matthaeum, 48, 2) 우리도 주님을 너무 익숙한 분으로만 여기면, 그분을 거부할 수 있다.
예수님은 사렙타의 과부와 시리아인 나아만을 예로 드신다.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 은총이 흘러간 것은, 그들이 믿음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성 이레네오는 이렇게 가르친다. “혈통이 아니라, 믿음이 아브라함의 자녀를 만든다.”(Adversus Haereses, IV,21,1) 곧, 하느님의 은총은 민족적 경계에 묶이지 않고, 믿음으로 열린 이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분노하여 그분을 벼랑으로 밀어내려 한다. 불편한 진리를 외면하고, 자기 틀에 맞지 않는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는 모습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진리는 사랑하기를 원치 않는 이들에게는 미움을 낳는다.”(Enarrationes in Psalmos, 58, 2) 주님은 우리 안에 자리한 완고함, 선입견, 자기중심적 생각을 드러내신다. 그것이 때로는 우리를 불편하게 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변화와 회개의 길이 열린다.
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백성 안에서 회개와 변화를 끊임없이 촉구하였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들은 거부를 당하였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고향에서 배척을 받으심으로써, 예언자들의 길을 따르셨다.”(2581항 참조) 교회 역시 세상 안에서 불편한 목소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이다. 복음은 우리 마음의 닫힌 문을 비추어 준다. 혹시 우리도 나자렛 고향 사람들처럼 익숙함에 갇혀 있지는 않은지, 혹은 불편한 말씀을 듣고 나자렛 사람들처럼 거부하려 하지는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 주님은 늘 새롭게 다가오시는 분이시다. 사순 시기, 우리는 편견과 고집을 내려놓고, 하느님께서 보내주시는 불편한 진리에도 마음을 열어야 한다. 우리도 나아만 장군이나 사렙타 과부처럼 믿음으로 구원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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