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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9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3-09 조회수 : 126

[사순 제3주간 월요일] 

 

루카 4,24ㄴ-30 

 

내가 말한 것이 진리라면?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사순 제3주간 월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아주 기묘한 장면을

목격합니다.

고향 나자렛에서 따뜻하게 환영받으셔야 할 예수님께서 오히려 살해 위협을 당하십니다.

사람들은 분노에 차 예수님을 고을 밖 벼랑까지 끌고 가 떨어뜨리려 합니다.

그런데 복음의 마지막 구절이 참으로 압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루카 4,30) 

 

왜 사람들은 그토록 분노했을까요?

진리는 본래 천상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상의 시선으로만 세상을 보는 이들에게 천상의 진리는 자신들을 무시하거나 공격하는 소리로

들립니다.

내 밑천이 드러나고 자존심이 깎이는 것 같으니, 진리를 말하는 사람을 박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님의 반응입니다.

그분은 그 살벌한 박해 한가운데를 유유히 가로질러 가셨습니다.

이것이 진리를 가진 자가 누리는 진짜 힘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옳은 소리를 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상대가 화를 내거나 비아냥거리면 우리 마음은 어떻게 됩니까?

같이 화가 나거나 억울해서 잠을 못 이룬다면, 그것은 아직 내 말이 진리가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진리를 말하는 사람은 타인의 반응에 자유롭습니다.

자유롭다는 뜻은 곧 그들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집착하지 않기에 흔들리지 않고, 흔들리지 않기에

미워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사랑하기에 진리를 선포하고, 그 결과는 하늘에 맡길 뿐입니다. 

 

옛날 어느 수도원에 규칙을 철저히 지키기로 유명한 수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형제들이 조금만 게으름을 피워도 즉각 충고했습니다.

"형제님, 지금은 침묵 시간입니다!",

"그렇게 기도해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공동체를 바로잡는 파수꾼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는 평화가 없었습니다. 형제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밤잠을 설칠 정도로 화가 났고, 형제들의 반응 하나하나에 시시각각 흔들렸습니다. 

 

결국 그는 스승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스승님, 저는 오직 진실만을 말하는데 왜 제 마음에는 평화가 없고 형제들은 저를 멀리할까요?'

스승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건 네가 진리를 말하는 게 아니라, 네 불편함을 배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수도자는 형제들의 흐트러진 모습이 자신의 평화를 방해하는 것이 싫어서 '진실'이라는 몽둥이를 휘두른 것입니다.

진리가 지상의 시선에 갇히면 폭력이 됩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요한 복음 강론』에서 "사랑 없는 진리는 고통만을 주는 가시가 된다"라고 경고했습니다.

내가 말한 것이 진리라면, 상대의 반응에 내 평화가 깨져서는 안 됩니다. 

 

루르드에서 성모님을 뵙던 베르나데트 성녀가 네베르 수녀원에 들어갔을 때, 수녀원장 마리 테레즈 보주 수녀는 그녀를 몹시 시기했습니다. 보주 수녀는 베르나데트의 겸손을 시험한다는 명목으로 온갖 모욕을 주었습니다.

"너는 쓸모없는 물건이다", "성모님을 뵈었다는 애가 그렇게 무식하냐"라며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보주 수녀는 이것이 '진실한 훈육'이라고 믿었지만, 사실은 천상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한 지상적 시기의 배설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베르나데트의 반응입니다.

그녀는 그 가혹한 비난 속에서도 단 한 번도 화를 내거나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 임무는 당신들을 믿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전하는 것뿐입니다" 라고 담대하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동료 수녀들이 어떻게 그런 모욕을 참느냐고 물었을 때, 성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제 영혼에 꼭 필요한 약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녀는 보주 수녀가 보인 악한 반응에 조금도 묶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진리를 가졌기에 자유로웠고, 자유로웠기에 자신을 박해하는 자를 끝까지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의 평화로 그 비난 한가운데를 유유히 가로질러 떠나간 것입니다. 

 

진리를 말하는 사람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강인함은 증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굳건한 신뢰에서 나옵니다.

세상이 나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여도, 내가 말한 것이 진리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당당함입니다. 

 

4세기 교회에 아리우스 이단이 판을 칠 때, 거의 모든 주교가 황제의 눈치를 보며 진리를

타협했습니다.

오직 아타나시오 성인만이 홀로 "그리스도는 참 하느님이시다"라는 진리를 외쳤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아타나시오 콘트라 문둠(Athanasius contra mundum)',

즉 '세상과 맞선 아타나시오'라고 불렀습니다. 

 

성인은 다섯 번이나 유배를 당했고 암살단에 쫓겼습니다.

한번은 배를 타고 도망가는데 추격자들이 나타나 물었습니다.

'아타나시오가 어디 있는지 아느냐?'

그때 아타나시오 성인은 태연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는 당신들 근처에 있습니다. 서둘러 가보십시오.'

추격자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쳤습니다. 아타나시오 성인은 그 죽음의 위협 한가운데서도

유머와 평화를 잃지 않았습니다.

진리가 지상 것들로부터 그를 자유롭게 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성인은 적들의 분노 섞인 반응 사이를 유유히 가로질러 가셨습니다. 

 

성 그레고리오 대교황님은 『도덕론』에서 "진리를 말할 때 생기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안락함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뿌리에서 온다"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말한 것이 진리라면, 나는 자유롭습니다. 그리고 그 자유는 세상을 향한 가장 강력한 사랑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돌팔매질도 우리를 멈추게 할 수 없는 그 자유가 우리를 참된 부활로 이끌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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