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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9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3-09 조회수 : 89

 [사순 제3주간 월요일] 

 

복음: 루카 4,24-30 

 

주님의 수난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자렛 회당에서 하신 말씀이 고향 사람들의 심기를 무척이나 불편하게 만들고 그들 마음 속에 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엘리야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루카 4, 24, 27) 

 

예수님의 말씀 끝에 나자렛 사람들이 보여준 행동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노발대발한 그들은 단체로 들고 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습니다.

마치 들개 한 마리 내쫓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그분들 벼랑 끝까지 끌고 가 아래로 밀어 떨어트리려 했습니다. 

 

어찌 보면 그들은 명백한 살상 의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살인미수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메시아로 오신 당신을 낭떠러지 아래로 밀어트리려는 고향 사람들의 모습에 예수님께서 느끼셨던 비애와 상처는 참으로 컸을 것입니다. 

 

암브로시오 교부 해석에 따르면 이렇습니다.

아직 주님께서 육체적으로 고통당하실 때가 이르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수난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야 했습니다.

그분은 나자렛 사람들에게 강제로 끌려가서 수난당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원하실 때 붙잡히시고, 십자가 나무 위에 매달리실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수난의 때가 이르지 않았습니다. 

 

나자렛 사람들이 백주 대낮에 서슴치않고 저지르는 극한 악행 앞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철저하게도 비폭력 평화주의 노선을 선택하십니다.

성령과 지혜로 충만하신 그분께서는 당신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황급히 뒤로 달아나지도 않으십니다.

의연하고 당당하게 적대자들 한 가운데를 가로 질러 떠나가셨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이 아시는 유일한 복수는 폭력을 단호히 거부하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하느님은 사람들의 폭력에 고통당하시는 것으로 대응하셨고, 악의 세력에 맞서 당신의 자비를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하느님의 지고한 사랑은 사람들에게 폭력으로 강제하시기보다는 차라리 우리가 저지른 죄로 말미암아 당신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히기를 바라시고, 아무것도 억지로 관철하려 하지 않고 아무도 강요하지 않으시며, 오직 당신의 사랑에 우리가 사랑으로 응답하기를 바라십니다. 

 

교부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사악을 희생 제물로 바친 사건이 궁극적으로 완성되었다고 이해했습니다. 

 

관대하신 하느님은 놀라운 방식으로 사람들과 경쟁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죽을 운명의 아들을 바쳤지만, 그 아들은 죽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하느님은 불멸의 아드님을 사람들을 위해서 죽음에 넘기셨습니다. 

 

이런 까닭에 고백자 막시무스는 다음과 같이 확신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신적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자발적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쿠르트 코흐, 죽음에서 생명으로, 바오로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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