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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9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3-09 조회수 : 89

사순 제3주간 월요일


 


 


행복한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잘 풀립니다. 그렇다면 행복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을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자기에게만 불행이 쏟아진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실 한 사람에게만 행운이 집중되지 않고, 한 사람에게만 불행이 쏟아지는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행복한 사람은 일어난 일의 밝은 면을 본다는 차이를 보입니다. 밝은 면만을 보니 좋은 인연도 많이 생기고, 이를 통해 좋은 기회가 눈에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모든 일이 잘 풀립니다.


 


행복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세상 것에 대한 욕심을 드러냅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 높은 자리를 누려야 행복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갖는다 해도 분명 행복하지 못합니다. 어떤 이는 말합니다.


 


“정말로 그런지 저도 돈 좀 많았으면 좋겠어요.”


 


제 주변에는 행복한 사람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저도 행복합니다. 그들과 함께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이 행복입니다. 꼭 비싼 곳에서 잠을 자고, 비싼 음식을 먹어야 행복할까요? 행복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곳이 바로 하느님 나라임을 기억하면서, 어떤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야 할지를 묵상했으면 합니다.


 


예수님 시대 사람들은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루카 4,22)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인간적인 틀에 가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구원 능력을 알아볼 수밖에 없었기에, 계속 표징만 요구하고 자기 기대에 맞는 메시아 상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바로 행복을 위해 표징을 요구하고, 행복을 위해 정치적인 메시아를 요구하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런 행복 추구는 진정으로 하느님 뜻이 아님을 분명히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렙타의 과부 이야기, 시리아 사람 나아만 이야기를 통해 유다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선민사상을 타파하십니다. 무엇보다 믿음 없음을 꾸짖습니다. 그리고 소외된 자, 가난한 자 그리고 이방인을 향한 구원의 손길을 펼치심을 이야기하십니다. 이런 예수님께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은 화가 났습니다. 자기들에게 구원의 손길이 펼치지 않음에 서운했고, 특히 고향 사람들은 남들과 다른 은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과연 회개했을까요? 그들은 분노하고 폭력을 행사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벼랑까지 끌고 가서 떨어뜨리려고 합니다. 행복의 근원이 바로 자기들 앞에 있음에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자기 뜻만을 내세우면서, 잘못된 행복만을 좇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우리도 그랬던 것이 아닐까요? 계속 불평불만을 외치면서 분노하고 폭력 행사하는 어리석은 모습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존재하는 것은 변화하는 것, 변화하는 것은 성숙하는 것, 성쑥하는 것은 무한히 창조하는 것이다(앙리 베르그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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