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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20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3-20 조회수 : 27

[사순 제4주간 금요일] 
 
복음: 요한 7,1-2.10.25-30: 아직 그의 때가 이르지 않았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사건을 전한다. 이 축제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천막을 치고 살던 시절을 기념하는 절기였으며, 하느님의 구원과 보호를 기억하는 중요한 전례적 순간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영원한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성전에 나타나셨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적대와 위협을 아시면서도 담대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그러나 복음은 분명히 말한다.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30절) 여기서 ‘때’(kairos)는 단순히 인간이 정하는 시간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정하신 구원의 때를 뜻한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은 우연히 일어난 비극이 아니라, 아버지의 구원 계획 안에서 성취되는 하느님의 시간이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구절을 이렇게 묵상한다. “예수님은 원하시지 않으면 붙잡히지 않으셨고, 원하시지 않으면 고통당하지 않으셨다.”(In Ioannem, Tract. 31,2) 즉, 예수님의 수난은 강제로 당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따른 자발적인 순종의 사건이었다. 
 
군중은 “우리는 저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다.”(27절)라고 말한다. 그들은 예수님의 인간적 출신(나자렛, 가족, 마을 공동체)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분의 신적 기원, 곧 “하느님에게서 오신 분”이라는 사실은 보지 못했다. 예수님은 단호하게 선언하신다.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28절)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참된 믿음이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앎이라는 것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말한다. “그리스도를 인간적 관점에서만 아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그분이 어디서 오셨는지도 알아야 한다.”(Hom. in Ioannem 48,1) 
 
군중은 예수님을 붙잡으려 했지만, 아무도 손을 대지 못했다. 왜냐하면, 아직 그분의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도 묻는다. 나는 예수님을 단지 역사적 인물이나, 훌륭한 스승으로만 알고 있는가? 아니면 그분이 하느님에게서 오신 성자, 나를 위해 죽음과 부활의 길을 걸으신 구세주라는 사실을 믿고 있는가? 진정한 신앙은 단순히 “예수님이 어디 출신인지 안다.”는 수준이 아니라, 그분이 누구신지를 믿고, 내 삶의 중심에 모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시간, 아버지의 뜻 안에서만 움직이셨다. 군중의 오해와 위협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으신 이유는, 당신의 때를 아버지께만 맡기셨기 때문이다. 사순 시기를 지내는 우리는,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시간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 인간적 지식이 아니라, 인격적 관계 안에서 예수님을 아는 믿음,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내 삶 속에서 따르는 용기를 청해야 한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는 그분을 참으로 알고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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