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간 금요일]
요한 7,1-2.10.25-30
인간관계에 발전이 없다면 이것이 멈췄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상반된 의견을 내놓습니다.
“그들이 죽이려고 하는 이가 저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보십시오. 저 사람이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는데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최고 의회 의원들이 정말 저 사람을 메시아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메시아께서 오실 때에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시는지 아무도 알지 못할 터인데, 우리는 저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유다인들에게는 구원자, 곧 메시아는 알 수 없는 분이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아기에게 메시아는 어머니입니다.
아기가 어머니를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아기는 엄마를 알아가며, 세상을 알아갑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1981년 5월 13일, 성 베드로 광장에 총성이 울렸습니다.
피로 물든 흰 수의를 입고 쓰러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구급차 안에서 이미 “나의 형제”를 용서한다고 나지막이 읊조렸습니다.
하지만 성인의 용서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병상에서 회복하는 동안 교황은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큼 집요하게 한 질문에 매달렸습니다.
“도대체 그 청년은 왜 나를 쏜 것입니까? 그가 누구이며,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교황은 단순히 관념적인 용서를 선포한 것이 아니라, 가해자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를 ‘이해’하려 했습니다.
그는 로마 경찰과 바티칸 정보국이 수집한 알리 아자에 관한 모든 보고서를 꼼꼼히 읽었습니다. 그가 터키의 극우 무장단체인 「회색 늑대」 소속이었다는 사실, 그의 가난했던 어린 시절, 그리고 그가 냉전 시대의 복잡한 정치적 음모 속에 이용당하고 있던 ‘영혼 없는 도구’였음을 파악해 나갔습니다.
성인은 알리 아자가 보낸 짧은 편지들의 행간을 읽으며, 그 안에서 ‘암살자의 당당함’이 아닌 ‘알 수 없는 힘에 대한 공포’를 발견했습니다.
1983년 12월 27일, 레비비아 감옥의 차가운 시멘트벽 사이에서 마침내 두 사람이 마주
앉았습니다.
교황이 알리 아자를 이해하기 위해 내민 첫 번째 손길은 그의 ‘언어’였습니다.
교황은 서툰 이탈리아어로 대화를 시도하며, 그를 범죄자가 아닌 한 명의 인격체로 대우했습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알리 아자는 교황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첫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은 왜 죽지 않았습니까? 나는 당신의 배를 정확히 조준했습니다.
전문 킬러인 내가 실패할 리가 없는데, 대체 당신을 살린 그 힘이 무엇입니까?”
이 순간 교황은 전율했습니다.
알리 아자가 궁금해한 것은 ‘용서’가 아니라 ‘파티마의 신비’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죽이지 못한 이 노인이 혹시 ‘강력한 신적 마법’을 부리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교황은 그 짧은 대화를 통해 알리 아자의 내면이 얼마나 황폐한 지를 꿰뚫어 보았습니다.
그는 신념에 찬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섭리 앞에서 겁에 질린 한 마리 가련한 짐승과 같았습니다.
면회를 마치고 나온 교황은 비서였던 스타니스와프 지비치 추기경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 두려움이 어디서 오는지 이해하게 되니, 내 마음속에 그에 대한 무한한 가련함이 샘솟았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용서란, 상대가 회개했기에 베푸는 보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상대의 비참한 영적 무지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릅니다”라는 예수님의 기도를 자신의 확신으로 만드는 과정이었습니다
(출처: 안드레아 리카르디, 『요한 바오로 2세: 성자의 삶』; 루이지 아카톨리, 『요한 바오로 2세의 사과』).
요한 바오로 2세 성인은 총을 맞는 순간부터 용서했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용서하기 위해 그를 알려고 부단히 노력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에 대한 용서는 사실 ‘어머니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합니다.
어머니를 알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에서 세상 사람들을 이해하는 능력이 길러집니다.
사실 요한 바오로 2세의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심장과 신장 질환으로 고통받던 어머니
에밀리아는 겨우 4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린 아들에게 어머니의 부재는 단순한 슬픔을 넘어,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하고 홀로 남겨졌다는 무의식적인 ‘원망’과 ‘상처’로 남을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상처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평생에 걸쳐 자신을 떠난 어머니가 어떤 분이었는지, 그가 겪었던 고통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고 이해하기 위해 집요하리만큼 성찰했습니다.
교황은 어머니를 기억하는 고향 와도비체의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어머니의 사소한 습관 하나까지 수집했습니다.
어머니가 생전에 “나의 어린 아들은 장차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라며 아들의 사제직을 예견하고 기도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성인은 어머니의 죽음을 ‘방치’가 아닌 ‘사명을 위한 희생’으로 재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서전적 대담집인 『선물과 신비』(1996)에서 “어머니의 죽음은 내 삶의 모든 질서를 무너뜨렸지만, 그분은 죽어서도 나에게 하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알려주셨다”라고 회고했습니다.
그는 어머니 에밀리아가 어린 시절 자신에게 가르쳐준 기도와 신앙의 태도를 복기하며,
어머니가 자신을 떠난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중개자’가 되기 위해 먼저 가셨음을 영적으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어머니를 알려고 노력합니다.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며 많은 질문을 해 댑니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와의 관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어머니가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아버지와 상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관계를 배워갑니다.
아이는 엄마를 더 알기 위해 아버지에 대해 알려고 합니다.
아버지가 세상에서 어떻게 힘들게
일하는지 이해하게 되면 엄마의 행동이 조금은 더 이해됩니다.
이것을 넘어서 아이는 엄마의 엄마, 그 가족을 이해하려 합니다. 저의 외가댁은 부산이고 저희는 평택에서 살아서 부산을 갈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갈 때마다 엄마의 가족을 알아갑니다. 그러면 엄마의 말과 행동이 조금 더 이해됩니다.
그런데 외할머니가 친할머니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어머니는 고아로 길을 잃었고 그 집에 살게 되었으며, 다른 집으로 또 옮겨 다니면서 무수한 고난을 겪었습니다.
연세가 많이 드셨는데도 어머니가 자꾸 부산에 가려고 하시는 것도 이미 돌아가시고 없을 친어머니가 그립기 때문입니다.
사실 앞으로도 알아가야 할 것이 많은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나면 성당에서 이상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신자들이 쉽게 이해가 됩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역사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어머니를 더 알려고 노력해 온 과정의 결과입니다.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다면 누구도 이해할 수 없고, 부모를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나의 이해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메시아께서 오실 때에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시는지 아무도 알지 못할 터인데,
우리는 저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라는 교만에 빠지지 맙시다.
우리는 아직 자신을 낳고 키워준 엄마 한 사람도 온전히 알고 이해하고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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