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5주간 목요일]
복음: 요한 8,51-59: “내 말을 잘 지키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놀라운 약속을 주신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51절).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죽음을 늦출 것”이라고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라 선언하신다. 여기서 말하는 죽음은 단순한 육체적 죽음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단절, 곧 영원한 죽음을 의미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 이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간다.”(In Ioannem Tractatus 43,1)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를 죽음에서 구하여,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힘이다. 우리가 말씀을 단순히 ‘듣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삶 속에서 지켜 살아낼 때, 말씀은 우리를 참된 생명에 머물게 한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56절).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떠났던 믿음의 아버지다. 그는 메시아의 날, 곧, 하느님의 구원이 이루어질 날을 멀리서 바라보고 기뻐했다. 히브리서도 이렇게 증언한다. “이들은 모두 믿음 속에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멀리서 그것을 보고 반겼습니다.”(히브 11,13). 성 이레네오는 이렇게 해석한다. “아브라함은 예언의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날을 보았고 기뻐하였다.”(Adversus Haereses IV,5,1) 아브라함의 기쁨은 단순히 미래에 무언가 올 것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이미 하느님의 약속 안에서 이루어진 메시아의 현존을 신앙으로 바라본 기쁨이었다.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나는 있었다.”(58절). 이는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다. 여기서 쓰인 “나는 있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당신의 이름을 밝히실 때 사용하신 표현(탈출 3,14: “나는 있는 나다.”)과 같은 말이다. 즉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바로 하느님과 하나이신 분, 영원으로부터 계신 분임을 계시하셨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 “주님은 ‘나는 아브라함 이전에 있었다’라고 하지 않으시고 ‘나는 있다.’라고 말씀하시어 당신의 영원성을 드러내셨다.”(In Ioannem Homilia 55,2) 이 말씀 앞에서 유다인들은 돌을 들어 치려 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이 말씀이 하느님의 모독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 이는 하느님의 가장 충만한 자기 계시였다. 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예수님께서 ‘나는 있다.’라고 선언하신 것은 하느님의 이름을 직접 자신께 적용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영원으로부터 계신 하느님과 하나이심을 드러내신다.”(211).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말씀을 지키는 길이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길임을 가르친다. 아브라함이 메시아의 날을 보며 기뻐했던 것처럼, 우리도 매일의 삶 속에서 말씀을 지키며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있다.”하시는 영원하신 하느님이시다. 그분을 믿고 따를 때, 우리는 결코 죽음을 보지 않고 영원한 생명 안에 머물게 될 것이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5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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