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간 화요일]
요한 13,21ㄴ-33.36-38
영광 교환을 통한 존재 상승의 메카니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배신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깔린 순간, 오히려 인류 역사상 가장 찬란한 ‘영광의 신비’를 선포하십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무서운 병은 ‘영적 변비’입니다.
하느님께 은총을 받기만 하고 그것을 영광으로
내놓지 않는 상태입니다.
이런 존재를 과학적으로는 ‘블랙홀’이라 부르고,
지리학적으로는 ‘사해(Dead Sea)’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의 사해는 요르단강의 맑은 물을 끊임없이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나가는 길이 없습니다.
태양 빛을 받아 물은 증발하고 염분만 남으니, 그곳은 생명이 살 수 없는 독탕이 되었습니다.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 존재는 결국 썩어 문드러집니다.
가리옷 유다가 바로 영적인 사해였습니다. 예수님은 유다에게 3년 동안 하느님 나라의 모든 비밀을 주셨고, 오늘 복음에서도 직접 빵을 적셔 입에 넣어주시는 ‘최고의 영광’을 베푸셨습니다.
주인이 손님에게 빵을 직접 주는 것은 "너는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다"라는 선언입니다.
하지만 유다는 그 영광을 삼키기만 했습니다. 감사의 고백도, 사랑의 보답도 없었습니다.
주님이 주신 영광이 유다의 이기심이라는 항아리에 갇혀 썩기 시작했을 때, 성경은 전율할 만한 기록을 남깁니다.
"그가 빵 조각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요한 13,27)
영광을 돌려주지 않는 마음은 사탄이 거주하기 가장 좋은 악취 나는 방이 됩니다.
우리의 존재 상승은 끊임없는 영광의 교환을 통해서입니다.
이것을 멈추는 순간, 존재의 상승도 멈추게 됩니다.
개구리가 되고 싶어 개구리 마을로 내려온 전갈이 있었습니다.
그는 너무도 착해서 개구리들이 받아주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강을 건너려고 하자 자신은 그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나를 등에 태워 건네주면 내 평생 은인으로 모시겠다."라고 애원합니다.
개구리는 겁이 났지만 전갈의 간곡한 부탁에 영광스러운 호의를 베풉니다.
그런데 강 중간쯤 갔을 때, 전갈이 개구리의 등을 찌릅니다.
둘 다 물에 빠져 죽어가며 개구리가 묻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니? 그러면 너도 죽잖아!" 전갈이 대답합니다.
"나도 알아. 하지만 이게 내 본성인 걸 어쩌겠니."
이것이 유다의 상태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영광을 받아도 내 안에 ‘영광의 반사판’이 없으면, 우리는 상대를 죽이고 나도 죽는 전갈이 됩니다. 영광을 돌려주지 않는 것은 존재를 사해처럼 만드는 것이며, 사탄의 지배를 부르는 행위입니다.
반면, 자신이 만나는 모든 관계에서 영광을 돌려줌으로써 자신의 비천한 신분을 고귀하게
상승시킨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아르헨티나의 성녀라 불리는 에바 페론, 영화 '에비타' (1996)의 주인공입니다.
영화 '에비타' 속 에바는 가난한 시골의 사생아로 태어나 밑바닥 인생을 전전했습니다.
그녀가 퍼스트레이디라는 존재의 정점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비결은 단순히 미모나 행운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만나는 남자마다 그들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정성을 다해 영광을 돌렸습니다.
무명 시절 에바는 인기 가수 아구스틴 마갈디를 만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상경합니다.
그녀는 마갈디가 자신에게 준 기회에 대해 그를 누구보다 빛나는 스타로 대접하며 보답했습니다.
그녀는 남자를 도구로 쓴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자신을 도와주었을 때 그 상대를 더 위대한 존재로 만들어줌으로써 사랑받는 법을 알았습니다.
사진작가나 제작자를 만날 때도 그녀는 그들의 능력을 찬양하고 그들이 자신을 통해 영광을 얻게 했습니다.
이 ‘영광의 되돌려줌’은 결국 후안 페론 대령을 만나게 했고, 에바는 페론에게 "당신이야말로 아르헨티나를 구할 유일한 메시아입니다"라며 전 국민의 지지를 조직하여 그에게 바쳤습니다. 페론이 그녀에게 지위를 주자, 에바는 그 대가로 페론을 ‘민중의 아버지’로 격상시키는 영광을 돌려주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자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했다는
오늘 복음의 논리가 세속적으로 실현된 셈입니다.
결국 에바는 자신이 페론 대통령에게 받은 그 엄청난 사랑과 영광을 다시 가난한 노동자들,
즉 ‘데스카미사도스(옷 없는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돌려주었습니다.
자신의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나를 위해 울지 마세요, 아르헨티나여(Don't Cry for Me Argentina)" 라고 노래하며 대중에게 받은 영혼을 다시 대중에게 봉헌했습니다.
그 결과 사생아 출신 배우는 한 나라의 ‘성녀’라는 신의 영역에 가까운 이름으로 영원히 기억되게
되었습니다.
관계의 비밀은 이처럼 내가 받은 영광을 내 주머니에 넣지 않고, 나를 높여준 상대에게 더 크게 돌려드리는 데 있습니다. (출처: 앨런 파커 감독, 영화 '에비타' 1996)
강론의 결론으로, 악의 밑바닥에 있다가 더 높은 존재와의 친교, 그리고 그 영광을 온전히 돌려드림으로써 성인이 된 「성 모세(St. Moses the Black)」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성 모세는 본래 이집트 강도 떼의 두목이었습니다.
사람을 죽이고 빼앗는 것만이 영광이라 믿던 짐승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회개하여 수도원에 들어갔을 때, 그의 변화는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는 밤새워 형제들의 물통을 채우고, 가장 힘든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거구의 흑인 수도자를 성인이라 칭송하며 온갖 영광을 돌렸습니다.
한번은 주교님이 그를 사제로 서품하며 흰 장식 옷을 입혀주었습니다.
"보십시오, 이제 모세 형제는 눈처럼 하얗게 되었습니다!"라며 모든 수도자가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때 모세는 자칫 ‘나는 이제 거룩한 사람이다’라는 자기 영광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수도원이 주는 영광을 즉시 자신을 낮추는 거울로 삼았습니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모세야! 겉은 하얗지만 속은 여전히 검은 네가 어떻게 이 영광을 가로챌 수 있겠느냐!"
서품식이 끝난 후, 수도원의 사제들은 그의 겸손을 시험해보기로 했습니다.
그가 제단으로 나아갈 때 사제들이 소리쳤습니다. "저 검둥이 강도 놈이 어디라고 거룩한 곳에 발을
들이느냐! 당장 나가라!" 모세는 아무 말 없이 쫓겨났습니다.
나중에 사람들이 왜 화를 내지 않았느냐고 묻자 모세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수도원이 저에게 준 영광은 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입니다.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돌려드렸으니, 저에게 남은 것은 비천한 강도였던 저의 진실한 모습뿐입니다.
저는 그 진실 안에서만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성 모세는 수도 공동체와 하느님이 주신 영광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지 않고 즉시 하늘로
돌려보냈습니다.
영광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그가 영광을 되돌려줄 때마다 그의 존재는 더 깊은 신성 안으로 상승했고, 결국 사막의 교부들 중 가장 빛나는 별이 되었습니다.
(출처: 소조메노스, 『교회사』 제6권 29항)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광의 동기화(Syncing)’를 제안하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십자가에서 죽는
그 비참한 순간을 ‘영광스럽게 되는 시간’이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고난을 통해 아버지의 사랑을
증명함으로써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해드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그 아들을
부활시키심으로써 다시 영광스럽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받은 영광을 우리에게 돌려주십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노래했습니다.
"주님, 당신께 돌려드리지 않은 영광은 우리 영혼을 무겁게 짓눌러 지옥으로 끌어내리지만,
당신께 봉헌한 영광은 우리에게 날개를 달아 당신께로 날아오르게 하나이다."
(출처: 성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제10권 36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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