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디지만 고백하고 증언해야 할 부활 신앙!
성서학자들은 마르코 복음서의 거의 끝부분에 자리한 오늘 복음 말씀을 편집상 몇 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 본문으로 봅니다. 그 근거 가운데 하나는 몇몇 주요 수사본이 이 본문을 생략한 채, 16장 8절, 곧“그들(마리아 막달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은 무덤에서 나와 달아났다. 덜덜 떨면서 겁에 질렸던 것이다. 그들은 두려워서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 하는 문구로 복음서를 맺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예외적인 문학 현상에 대하여 학자들은 복음서의 말미가 일찍부터 소실되어, 훗날 어떤 편집자가 다른 복음서의 부활 기사들을 참조하여 엮은 9-20절로 이 자리를 채워놓은 것으로 봅니다.
성서학자들의 이와 같은 주장을 존중하면서도, 메시지만큼은, 최후의 편집자가 왜 이 내용을 엮어 삽입해 놓았는지만큼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증언과(마태 28,1-10; 루카 24,1-12; 요한 20,1-18 참조) 엠마오 제자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2루카 24,13-35) 제자들은 “그녀의 말을 듣고도 믿지 않고”(11절), “그들의 말도 믿지 않고”(13절),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15절). 제자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이 세 차례에 걸쳐 확인됩니다. 부활신앙 앞에 너무나 더딘 제자들의 모습이 다소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러나 좀 더 들어가 보면, 마리아 막달레나나 엠마오의 두 제자의 부활 신앙도 그렇게 간단하게 체득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막달레나도 두 제자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누구의 도움도 없이 즉각 알아보고 신앙으로 고백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몸소 다가와 당신이 바로 그분임을 알려주심으로, 막달레나는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요한 20,18)하고 고백하며, 엠마오의 제자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루카 24,35)을 증언합니다. 두 눈으로 직접 뵙고도 믿어 고백함이 쉬운 일이 아니었거늘, 전해 듣고 받아들인다는 것이 심리적으로 얼마나 혼란스럽고 복잡한 일이었는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의 더딘 부활 신앙에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시면서도, 이러한 시간과 과정을 극복해야만 굳건한 부활 신앙에 이를 수 있음을 잘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함은 단순한 차원의 꾸짖음을 넘어, 이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일러주심에 그 목적이 있음을 살펴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 방법이란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일”입니다.
이처럼, 제자들은 의심 많음에서 출발하여 예수님의 부활 신앙에 이른 사람들입니다. 제자들은 부활 신앙 때문에 겪어야 했던 수많은 반대와 박해에도 불구하고, “복음 선포”만이 부활 신앙을 드러내는 일임을 가슴 깊이 새기며, 때로는 주님께 죄송한 마음으로, 온 세상으로 뛰어나갔던 사람들입니다. 복음 선포를 통해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이 구원의 세계로 다가서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제자들의 뒤를 이어 우리의 부활 신앙을 드러내고 전해야 할 때입니다. 부활 신앙에 더뎠던 제자들이 혼란스럽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 믿어 고백한 부활 신앙, 주님이 가르쳐주셨던 대로 ‘복음 선포’를 통하여 힘차게 증언해 나갔던 그 부활 신앙을 가슴에 새기며, 오늘 하루 만나는 모든 사람, 모든 피조물에게 기쁨과 행복을 전하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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