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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1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4-11 조회수 : 88

[4월 성모 신심 미사] 
 
요한 2,1-11 
 
참된 사랑은 더 큰 사랑을 사랑하게 하는 것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요한 2,5)
찬미 예수님!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 미사를 봉헌하는 날입니다.
오늘 복음인 카나의 혼인 잔치는 우리 성모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나를 희생해서 상대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도 귀한 사랑입니다.
하지만 성모님은 한 차원 더 높은 사랑을 가르쳐주십니다.
진정한 사랑은 단순히 포도주를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그 포도주를 채워주시는 분이 '예수님'이심을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믿어서 그분 말씀에 순종하여 구원되게 만드는 것보다 큰 사랑은 없습니다.  
 
우리는 종종 '너를 위해 내 인생을 다 바쳤다'라고 말하는 사랑을 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사랑을 받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숨이 막힙니다. 왜 그럴까요?
그 사랑의 목적지가 '나'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를 위해 이만큼 희생했으니 너는 이제 내 말을 들어야 한다"라는 무언의 압박입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영적인 채무 관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성인처럼 사는 신앙인이나 성직자들에게서도 많이 일어납니다.  
 
현대의 위대한 영성가 헨리 나우웬은 그의 저서 『내면의 목소리』에서 자신이 겪었던 영적 위기를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그는 라르슈 공동체에서 한 장애인 형제를 돌보며 밤낮으로 헌신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 형제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 형제가 나우웬이 아닌 다른 봉사자를 따르거나 주님의 평화를 느끼며 독립적인 모습을
보일 때, 나우웬은 묘한 질투심과 상실감을 느꼈습니다.
그때 그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헨리, 너는 그를 사랑하는 것이냐, 아니면 그가 너를 필요로 하는 그 상태를 사랑하는 것이냐?'
나우웬은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사랑이 사실은 상대가 나 없이는 살 수 없게 만듦으로써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려던 이기적인 욕망이었음을 말입니다.
내가 도와줬으니 나를 믿으라는 사랑은 결국 상대를 내 자아의 감옥에 가두는 행위입니다.
(출처: 헨리 나우웬, 『내면의 목소리』)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은 전혀 다르게 행동하십니다.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성모님은 하인들에게 "내가 해결해 줄 테니 걱정 마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혹은 "내가 예수의 엄마니까 내 말만 들어라"고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으셨습니다.
성모님은 예수님께 상황을 알리신 뒤, 하인들에게 가장 짧고 강력한 한마디를 던지십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요한 2,5). 
 
이것이 성모님의 참사랑 실천법입니다.
성모님은 사람들의 시선을 자기에게 묶어두지 않으시고, 곧장 예수님께로 던져버리십니다.
내가 아닌 '그분의 말씀'을 실천하게 만드는 것,
그래서 기적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이 나를 칭송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게 만드는 것!
이것이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가장 큰 사랑입니다. 
 
1841년 12월 8일, 돈 보스코 성인은 제의실에서 매를 맞던 떠돌이 소년 바르톨로메오 가렐리를 만납니다.
성인은 소년의 자존감을 살려주기 위해 다정하게 말을 건넸지만, 소년은 시종일관 "아무것도 못 합니다", "글도 모릅니다"라며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돈 보스코는 최고의 사랑을 베풉니다.
바로 소년이 '주님의 능력'을 끌어다 쓸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준 것입니다. 
 
"얘야, 그럼 나를 위해 성모송 한 번만 바쳐주겠니?"
소년은 주저하며 "저는 기도할 줄 몰라요"라고
답했습니다.
성인은 "내가 가르쳐줄 테니 시키는 대로만 따라 해보렴"이라며 소년과 함께 무릎을
꿇었습니다.
성모송을 다 마쳤을 때, 소년의 눈빛이 바뀌었습니다.
훗날 가렐리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날 신부님과 성모송을 바치는 순간, 제 마음속에 있는 어둠이 걷히고 '나도 무언가 할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용기가 샘솟았습니다." 
 
무엇이든 그가 시키는 대로 하면 ‘나도 무언가 할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란 자존감이 생깁니다.
하느님은 그런 명령만 내리시기 때문입니다.
3일 뒤인 12월 11일, 가렐리는 약속대로 다른 떠돌이 소년 6명을 데리고 나타났습니다. 가렐리는 평범한 노동자가 아닌, 수많은 아이를 주님께로 인도하는 살레시오회의 첫 번째 사도가 되었습니다.
(출처: 테레시오 보스코, 『돈 보스코 전기』; 살레시오회 역사 사료) 이것이 참사랑입니다.
더 큰 사랑으로 인도해주는 것. 그래야 더 큰 자존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모님께 참사랑을 배웠습니다.
참사랑은 상대를 나에게 묶어두는 쇠사슬이 아니라, 주님께로 날려 보내는 날개입니다.  
 
전설적인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의 유명한 일화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1930년대, 그는 뉴욕 필하모닉과 함께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했습니다.
연주가 끝나자 공연장은 떠나갈 듯한 갈채와 환호로 가득 찼습니다.
관객들은 지휘자의 천재적인 곡 해석에 매료되어 그에게 끝없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토스카니니는 그 영광을 자신의 것으로 가로채지 않았습니다.
그는 감격에 젖어 눈물을 흘리는 단원들을 향해 몸을 굽히고는 작게 속삭였습니다.
"여러분,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직 베토벤만이 모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목적지'가 되는 것을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베토벤의 위대함을 전하는 정직한 '표지판'일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연주자들이 지휘자 때문에 행복한 게 아닌 베토벤 때문에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성모님을 닮은 참사랑 실천법입니다. 
 
교부 성 암브로시오는 이렇게 권고했습니다.
"마리아의 영혼이 우리 각자 안에 있어 주님을 찬송하게 하고, 마리아의 정신이 우리 각자 안에 있어 주님 안에서 기뻐하게 합시다.
우리가 마리아처럼 '그분께서 시키는 대로' 행할 때, 우리 삶의 맹물은 감미로운 포도주로 변화될 것이며, 우리 주변 사람들은 우리를 넘어 주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성 암브로시오, 『동정녀론』). 
 
나를 믿게 만드는 가짜 사랑의 유혹을 뿌리치고,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는 한마디로 사람들에게 구원의 믿음을 선물합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성모님과 함께 참된 사랑의 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하고, 아버지는 성모님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자녀를 가르쳐야 합니다.
참된 사랑은 더 큰 사랑을 사랑하게 하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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