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2주간 월요일]
복음: 요한 3,1-8: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예수님께서는 니코데모에게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3절)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위로부터’(ἄνωθεν)는 하느님한테서 오는 새로운 창조를 의미한다. 이는 인간의 노력이나 혈통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과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탄생이다. 성 이레네오는 이렇게 가르친다. “세례를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께로 다시 태어난다. 성령 안에서 새로운 인간이 되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Adversus Haereses III,17,1) 즉, 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단순한 윤리적 개선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성령 안에서 새로워지는 것이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5절) 여기서 “물과 성령”은 곧, 세례성사를 가리킨다. 세례는 단순한 상징적 의식이 아니라, 죽음과 부활, 새로운 피조물로의 탄생을 이루는 성사다. 성 바실리오는 세례를 이렇게 설명한다. “물은 죽음을 상징하고, 성령은 생명을 준다. 우리가 물속에 잠길 때 옛사람이 묻히고, 성령으로 다시 일어날 때 새사람이 되어 부활한다.”(De Spiritu Sancto XV,36)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6절) 육에서 태어남은 인간의 본성 안에 있는 한계와 죄의 결과로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성령께서 주시는 새 생명은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한 생명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를 이렇게 묵상한다. “육은 육만을 낳고, 영은 영을 낳는다. 첫 번째 탄생은 죽을 수밖에 없는 삶을 주지만, 두 번째 탄생은 죽을 수 없는 삶을 준다.”(In Ioannis Evangelium Tractatus 11,6) 따라서 신앙인은 단순히 혈통이나 인간적 조건이 아니라, 성령의 은총 안에서 다시 태어나야만 하늘 나라의 시민이 될 수 있다.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희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8절) 이는 성령의 자유와 신비를 드러낸다. 성령께서는 인간의 계산과 조건을 넘어, 원하는 사람에게 자유롭게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분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풀이한다. “성령은 어떤 법칙이나 한계에 매이지 않으신다. 그분은 자유롭게, 누구에게나, 언제나, 그리고 놀랍게 역사하신다.”(Homiliae in Ioannem 25,2)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이미 “위로부터 난 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성령께서 주시는 새로운 생명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성령의 바람에 자신을 맡길 때, 비로소 참된 자유와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하늘 나라의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