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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15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4-15 조회수 : 14

복음: 요한 3,16-21: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오늘 복음은 요한 복음 전체의 핵심이라 불릴 만큼 중요한 말씀을 전해 준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16절). 이 말씀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마음, 곧 사랑의 본질을 발견한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심판하기 위해 아들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을 내어주셨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 곧, 이토록 크고 깊이 사랑하셨다. 단순히 사랑하셨다고만 하지 않고 ‘이처럼’이라고 하신 것은, 그 사랑이 헤아릴 수 없음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In Ioannem homilia 27,1) 하느님께서 아들을 내어주셨다는 사실은 사랑의 극치이다. 이는 단순한 애정의 표현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희생적 사랑이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17절) 그러나 동시에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고 말씀하신다(18절). 심판은 훗날 일어나는 사건이기 이전에, 지금 우리의 선택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를 이렇게 해석한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심판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그분을 통하여 세상이 구원받게 하려고 오셨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그분의 첫 번째 오심이 자비를 위한 것이지 심판을 위한 것이 아님을 뜻한다.”(In Ioannis Evangelium Tractatus XII,12)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우리의 믿음과 선택이 이미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고 있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19절) 하느님의 심판은 결국, 인간이 스스로 빛을 거부하고 어둠을 선택하는 데서 비롯된다. 성 이레네오는 이렇게 말한다. “빛이 드러났지만, 빛 안에 있는 이들은 그 빛을 보고 비추어진다. 그러나 어둠 속에 머무르는 자들은 스스로 자기 눈멂의 원인이 된다.”(Adversus Haereses IV,39,1) 빛으로 나아가는 것은 단순한 사상적 동의가 아니라, 실제 삶의 변화를 요구한다. 믿음은 단순히 지적 동의가 아니라, 성령의 빛 안에서 이루어지는 전인적 응답이다. 
 
하느님은 세상을 이토록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내어주셨다. 그 사랑은 심판보다 크고, 죄보다 강하다. 하지만 그 사랑을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는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이다. 우리가 어둠을 버리고 빛을 선택할 때, 우리 삶은 하느님께 속한 것이 드러난다. 선행과 나눔, 자비의 실천 속에서 우리는 빛의 자녀로 살아간다. 그러므로 감사와 기쁨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며, 빛이 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참된 믿음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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