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2주간 수요일
성녀 잔 다르크의 믿음을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성녀는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전쟁 당시 콩피에뉴 전투에서 영국군에 체포 구금되어 갖은 고초를 겪게 됩니다. 그리고 파리의 종교 재판관들에게 넘겨져 이단 재판을 받습니다. 어떤 꼬투리라도 잡아 성녀를 이단자로 단죄하려는 종교 재판관들은 적대적이고 위압적인 심문을 이어갔습니다. 그들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잔 다르크 따위에게 은총이 주어지고 있을 리가 없다고 단정하여 조롱하듯 질문했습니다.
“어떤 상황이건 그대가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고 생각하는가?”
성녀는 이 질문에 확신에 찬 태도로 답했습니다.
“그분의 은총을 받지 못했다면 제게 내려주시기를, 은총을 받고 있다면 그분께서 계속해 주시기를. 그분의 은총 아래에 없다는 것을 제가 알았다면, 저는 세상의 가장 슬픈 존재입니다.”
우리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당신의 은총 안에 머무르실 원하십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은총을 주시며, 그렇지 않다면 불쌍히 여겨서 은총을 얼른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공로와 노력보다 늘 앞서 계시는 분이십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지금을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은총 받았음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빛이신 주님이 아닌 자기의 어두운 이기심 안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첫 구절은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요한 3,16)라고 시작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세상’은 종종 하느님을 적대하고 빛을 거부하는 타락한 인류를 뜻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당신을 배척하는 이 세상조차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랑하십니다. 인간의 자격이나 선행이 필요하지 않고 오로지 전적인 하느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들을 보내십니다.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라는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이미 시작된 심판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요한 3,18)
보통 심판은 세상 끝 날이라는 미래의 사건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그 심판이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심판의 기준은 믿음에 따라 결정됩니다. 결국 인간 스스로 선택하는 영적 상태인 것입니다. 아들을 믿지 않고 거부하는 것 자체가 이미 생명의 근원으로부터 단절된 것이기에 이미 심판을 받았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분명히 선택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가장 귀한 외아들을 내어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며 생명의 길을 열어두셨습니다. 따라서 주님께 대한 믿음으로 그 길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 길을 거부하면서 자기의 어두운 이기심 안에만 머물면 생명의 길에 들어설 수 없습니다.
오늘의 명언: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소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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