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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1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4-16 조회수 : 131

[부활 제2주간 목요일] 
 
요한 3,31-36 
 
왜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가?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은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께서 성령을 한량없이 주시기 때문이다." (요한 3,34)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입을 빌려 우리 인생의 근본적인 '소속'에 대해 질문합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하늘입니까, 아니면 땅입니까?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는 '말'이 곧 우리의 '소속'을 증명한다고 하십니다.
땅에 속한 사람은 땅의 것을 말하고, 하늘에서 오신 분은 하늘의 일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아주 신비롭고도 무거운 구절이 있습니다.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인한 것이다." (요한 3,33).
이 구절의 원문 의미는 하느님의 말씀에 '인장(Seal)'을 찍는다는 뜻입니다.
피조물인 우리가 감히 창조주 하느님께 "당신은 참되십니다!"라고 도장을 찍어드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며, 왜 이것이 우리에게 성령을 한량없이 주시는 열쇠가 되는지 깊이 묵상해 보겠습니다. 
 
누군가를 믿어준다는 것은 단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상대의 인격에 내 인생을 걸어 도장을 찍어주는 일입니다.
만약 제가 여러분에게 "내일 10시에 성당 앞에서 만납시다"라고 했는데, 여러분이 그 말을 믿고
10시에 나타난다면 여러분은 제 말이 '참되다'는 것을 여러분의 행동으로 증명한 셈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가장 감동시켜 '영광의 보물창고'를 열게 만든 한 이방인이 등장합니다.
바로 카파르나움의 백부장입니다.
그는 중풍으로 누워있는 자기 종을 고쳐달라고 주님께 청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고쳐 주마"라고 하시자,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놀라운 고백을 던집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하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저도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제가 이 사람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더러 ‘오라!’ 하면 옵니다." (마태 8,8-9) 
 
이것이 바로 '인장을 찍는 행위'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단순히 병 고치는 마술사가 아니라, 우주 만물에 명령을 내리시는 '사령관'으로 공인했습니다.
그가 주님의 말씀이라는 권위 아래 도장을 꽉 찍는 순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적이 없다!" 
 
백부장이 주님의 말씀을 진리라고 보증해드리자, 주님께서는 그에게 '한량없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직접 가지 않고도 말씀 한마디로 병을 고치는 권능을 보여주셨고, 그를 모든 신앙인의 모델로
세워주셨습니다.
우리가 "말씀만 하소서, 제가 그대로 살겠습니다"라고 응답할 때, 하느님은 당신의
자존심을 걸고 우리 삶에 기적의 예산을 집행하십니다. (출처: 『주석 성경』 마태오 복음 8장) 
 
오늘 복음 34절은 기막힌 약속을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한량없이(without measure)' 주신다는 것입니다.
왜 누구에게는 찔끔 주시고 누구에게는 폭포수처럼 주실까요?
하느님은 당신의 명예를 걸고 당신의 진실함을 증언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아낌없이 쏟아부어 주십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명예 경영' 원리입니다. 국가의 특명을 받은 전권 대사가 외국에 나갔을 때,
국가는 그 대사에게 필요한 모든 자금을 '한량없이' 지원합니다.
왜일까요? 그 대사의 체면이 곧 국가의 체면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대사가 돈이 없어서 무시당한다면 파견한 국가가 무시당하는 꼴이 됩니다. 
 
우리가 세상 한복판에서 "하느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분은 참되십니다!"라고 그분의 말씀을 자신의 삶으로 증언하기 시작하면, 하느님은 비상이 걸립니다.
'저 자가 나를 믿고 모든 것을 걸었는데, 만약 저 자가 무너진다면 세상이 나를 가짜라고 비웃지 않겠느냐!'
그래서 하느님은 당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증언하는 자에게 성령의 지혜와 능력을 무한정 공급하십니다.
성령은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진실함을 위해 자기 목숨을 거는 '정직한 증언자'에게 한량없이 쏟아지는 하느님의 지원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말씀 그 자체이십니다. 따라서 그분에게 인장을 찍는다는 것, 즉 그분을 내 삶의 유일한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은 성령의 저수지 문을 여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백지 수표를 주면서 "여기 내 서명이 되어 있으니 필요한 만큼 적어서 쓰시오" 라고 했다고 칩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종이의 질이 아니라 그 아래 찍힌 '인장(서명)'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 수표를 보며 '이게 정말 돈이 될까?' 의심하며 지갑에 넣어만 둔다면, 그것은 종이조각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 서명을 믿고(인장을 찍고) 그 수표에 10억을 적어 은행에 내미는 순간, 은행은 그 서명의 주인이 가진 모든 자본력을 동원해 여러분에게 돈을 지급해야 합니다. 
 
성령은 바로 이 '은행의 자본력'과 같습니다. 예수님이라는 '말씀의 수표'를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사용하기로 결단하고 그분의 진실함에 인장을 찍는 순간, 하늘 은행은 성령이라는 에너지를 한량없이 내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하느님의 수표에 인장을 찍지 않는 것이고, 그래서 성령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내 주머니 사정을 보는 게 아니라, 수표 밑에 찍힌 하느님의 인장을 보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광의 동기화’를 제안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진리라고 확증하는 인장을 찍은 이들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성령의 평화와 기쁨으로 충만해집니다.
그 성령은 죽음조차 농담처럼 여길 수 있게 만드는 영원한 생명의 에너지입니다. 
 
서기 258년, 로마의 부제였던 성 라우렌시오는 교회의 보물을 내놓으라는 황제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금은보화를 챙겨 바쳤겠지만, 라우렌시오는 주님의 말씀을 진리라고 믿는
'인장'을 찍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이들, 병든 이들을 데려와 황제 앞에 세우며 외쳤습니다.
"이들이 바로 교회의 영원한 보물입니다!" 
 
진리에 인장을 찍은 대가는 가혹했습니다.
그는 시뻘겋게 달구어진 석쇠 위에 눕혀져 서서히 타 죽는 형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진실함을 보증한 라우렌시오에게 성령을 '한량없이' 쏟아부어 주셨습니다.
성령의 기쁨이 육신의 고통을 완전히 압도해버린 것입니다. 
 
살이 타들어 가는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도 라우렌시오의 얼굴에는 천상의 광채가 감돌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박해자들을 비웃으며 전설적인 유머를 던졌습니다.
"이봐라! 이쪽은 다 구워졌으니 이제 뒤집어라!" 성령의 힘이 아니면 이런 상황에서 이런 말이 나올 수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간다는 증거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참되다는 것을 증거하는
그 상황에 어떻게 세상 사람들 앞에서 얼굴을 찌푸리게 하시겠습니까? 
 
오늘 여러분의 입술은 무엇을 증언하고 있습니까?
세상의 한숨과 불평을 쏟아내는 것은 땅에 속했다는 증거입니다.
이제 입을 열어 하늘의 일을 말씀하십시오. "하느님은 참되시다! 그분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라고 여러분의 삶으로 인장을 찍으십시오.
하느님의 체면을 세워드리는 정직한 증언자가 될 때,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인생 전체를 성령의 권능으로 덮어주실 것입니다.
석쇠 위에서도 웃을 수 있게 하는 그 한량없는 성령의 은총이, 오늘 하느님께 인장을 찍어드리는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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