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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1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4-17 조회수 : 118

[부활 제2주간 금요일] 
 
요한 6,1-15 
 
믿음을 키우는 법: 희망하니까 되네?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요한 6,9) 
 
찬미 예수님!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가장 많이 마주하는 두 종류의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하나는 계산기를 두드리며 불가능을 선언하는 '하지만'의 목소리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현존을 믿기에 초라한 것을 내어놓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목소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우리 안의 '필립보'를 깨워 현실의 장벽을 보게 하시고, 동시에 우리 안의 '안드레아'를 초대하여 기적의 파트너로 삼으십니다.
오늘은 이 두 언어가 어떻게 우리의 정체성을 결정하고 인생의 경로를 바꾸는지, 특히 '희망'이라는 연습이 어떻게 '믿음'의 기적을 낳는지 1시간 동안 깊이 탐구해 보겠습니다. 
 
필립보는 예수님의 제자 중 가장 똑똑하고 논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어디서 사면 좋겠느냐?"라고 물으시자마자 그는 즉시 시장 조사와 회계 분석을 마쳤습니다.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부족하겠는데요?"
필립보의 이 한마디 뒤에는 "하지만 안 됩니다, 방법이 없습니다"라는 선언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필립보를 '현실적'이라고 말하지만, 영적으로 그는 '학습된 무력감'에 빠진 상태입니다.
내가 해봤는데 안 되더라, 가진 것이 이것뿐인데 무엇을 하겠느냐는 부정적인 경험의 축적이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가로막는 담벼락이 된 것입니다. 
 
긍정심리학의 창시자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의 유명한 실험이 있습니다.
개를 상자에 가두고 바닥에 피할 수 없는 전기 충격을 줍니다.
처음에는 개들이 담장을 넘으려 발버둥을 칩니다. 하지만 하버드 대학 연구진은 담장을 높여 절대로 탈출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좌절을 수십 번 겪은 개들에게 나중에는 살짝만 점프해도 도망갈 수 있도록 담장을 낮췄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전기 충격이 가해져도 개들은 도망치려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고통을 견디며 낑낑거릴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못 해"라는 무력감이 뇌의 회로를 장악했기 때문입니다.
이 실험이 무서운 이유는, 무력감이 개인을 넘어 집단으로 전염될 때 그 공동체는 눈앞의 기회조차 '하지만'이라는 말로 발로 차버리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출처: Martin Seligman, 『Learned Helplessness』) 
 
이런 집단적 무력감은 때로 '과학'이나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한 시대를 절망의 감옥에 가두기도 합니다.
누구나 "하지만 안 돼"라고 말하는 곳에서는 하느님조차 일하실 자리가 없습니다. 
 
1954년 이전까지 육상계에는 전설적인 '불가능의 벽'이 있었습니다.
1마일(약 1.6km)을 4분 안에 주파하는 것은 인간의 신체 구조상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의사들과 생리학자들은 의학 전문지에 "인간이 4분 벽을 깨려 한다면 심장이 터지거나 폐가 파열되어 죽게 될 것" 이라는 경고를 수없이 기고했습니다. 
 
모든 육상 선수는 이 '집단적 절망'에 사로잡혔습니다.
선수들이 4분 1초, 4분 2초대까지 도달하면
그들의 뇌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더 빨리 뛰면 죽어! 이건 인간의 영역이 아니야!"
수천 명의 선수가 그 지점에서 포기했습니다. 100년 넘게 인류는 이 "하지만 안 돼"라는 논리에 갇혀 스스로를 무덤에 가두었습니다. 
 
 하지만 1954년 로저 배니스터라는 청년이 이 벽을 깨는 순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죽을 거야"라는 소리를 무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려보겠다"라고 결단한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벽을 깬 후, 불과 1년 만에 37명의 선수가 연달아 4분 벽을 돌파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을 막고 있었던 것은 신체가 아니라 "하지만 불가능하다"라고 외치던 집단적 무력감의
쇠사슬이었습니다. (출처: 존 린드그렌, 『로저 배니스터: 4분 마일의 영웅』) 
 
반면 안드레아는 달랐습니다.
그는 "하지만 이 많은 사람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라고 말하며 인간적인 한계를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이가 가진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 가져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의 아주 중요한 질서를 발견합니다.
희망은 사다리의 '세로대'이고, 믿음은 그 사이에 끼워 넣는 '가로대'입니다.
사다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려면 먼저 양옆의 긴 세로대를 땅에 튼튼히 박아야 합니다.
그 세로대가 바로 '희망'입니다. 
 
안드레아는 비록 그 빵이 부족해 보였지만, '주님 곁이라면 무언가 일어날 것'이라는 희망의 세로대를 먼저 세웠습니다.
그 세로대가 버티고 있었기에, 예수님께서는 그 위에 '믿음의 가로대'를 덧붙여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의 사다리를 완성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희망하지 않는 자에게는 믿음도 줄 수 없습니다. 세로대 없는 사다리에 가로대를 붙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신약의 기적을 베푸시기 전, 항상 우리에게 '구약의 희망'을 요구하시며,
그 희망을 '연습'하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없음'을 기꺼이 내어놓는 그 절박한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기다리십니다.
그 봉헌이 있어야만 주님은 당신의 전능함을 쏟아부으실 수 있습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 콜카타의 빈민가에서 사역을 시작하려 할 때, 수녀님의 손에는 고작
3루피뿐이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조롱했습니다.
"하지만 그 돈으로 어떻게 병원을 세우고 아이들을 먹입니까?" 데레사 수녀님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마더 데레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과 함께라면 이 3루피는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실제로 수녀원이 초창기였을 때, 아이들에게 줄 빵이 단 한 조각도 남지 않은 날이 있었습니다.
요리 담당 수녀가 "하지만 오늘 먹일 게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보고했을 때, 마더 테레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을 치고 아이들을 식당에 모으십시오"라고 명령했습니다. 
 
아이들이 빈 식탁 앞에 앉아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 시작한 그 순간, 성당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정부에서 학교에 배급하려던 빵 차가 고장 나는 바람에, 유통기한 내에 다 처분해야 한다며
수천 개의 빵을 수녀원에 기증한 것입니다.
보리 빵 다섯 개를 내놓은 안드레아의 심장이
오늘날 콜카타에서 재현된 것입니다.
성녀는 아무것도 없는 절망의 순간마다
'종을 치는 행위'를 통해 희망을 연습했습니다. (출처: 캐서린 스핑크, 『마더 테레사 전기』) 
 
오늘 우리의 손에는 무엇이 들려 있습니까? "하지만 제 건강이 나빠서, 하지만 제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나빠서..." 이런 '하지만'의 핑계 뒤에 숨지 마십시오.
그것은 우리 영혼을 무력감의 상자에 가두는 사탄의 속삭임입니다. 
 
안드레아처럼, 마더 데레사처럼, 요한 보스코처럼 그 초라한 보리 빵을 들고 주님 앞으로 나오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 당신이 여기 계시니 제가 이것을 바칩니다"라고 고백하십시오.
희망의 세로대를 먼저 세우는 연습을 하십시오.
그때 비로소 믿음의 가로대가 붙여져 기적의 사다리가 완성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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