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2주간 금요일
가난한 나라의 행복 만족도는 점점 잘 살아가면서 올라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행복 만족도는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기는 순간부터, 즉 절대적 빈곤이 해결되는 순간까지만 올라간다고 하더군요. 그 뒤부터는 상대적 빈곤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돈이 얼마나 있으면 행복할까?”라는 질문에, 미국은 우리나라 돈으로 12억쯤 있으면 행복하겠다고 했고, 독일은 8억 정도, 두바이나 홍콩은 27~28억이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공식적으로 정리된 자료가 없어서 제시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역시 적지 않은 금액을 말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지만, 아무리 많은 재산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행복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가족 안에서, 또 직장과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 좋은 관계가 형성되어야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상대에게 “괜찮아. 너는 좋은 사람이야.”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행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돈과 같은 물질적인 풍요로서가 아니었습니다. 또 세상의 지위를 통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당신과의 관계를 통한 행복이었습니다. 당신과 함께할 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고 물으십니다(요한 6,5).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자 안드레아가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요한 6,9)라고 말합니다.
보리 빵은 당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먹던 거칠고 값싼 음식입니다. 장정만도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을 먹이기엔 터무니없이 초라한 것이지만, 가장 작고 보잘것없는 것을 주님 손에 온전히 내어놓을 때 기적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주님 손에 온전히 봉헌하고 있었을까요? 작은 봉헌도 주님의 축복을 거칠 때 모두를 살리는 은총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합니다(요한 6,15). 예언자로 알아보지만, 그들의 깨달음은 한없이 부족했습니다. 단순히 로마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고 평생 빵 문제를 해결해 줄 현세적이고 정치적인 임금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단호히 그 자리를 떠나 산으로 물러가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사람들의 세속적 욕망을 채워주는 인기 있는 왕이 되기 위함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군중의 모습 속에 비친 우리의 신앙을 돌아봅니다. 예수님을 단순히 이 세상에서 기적을 베푸는 임금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내어주시는 참된 구원자로 믿고 따라야 합니다. 진정한 행복이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가 기도할 때, 울 때, 입 맞출 때, 꿈꿀 때 왜 눈을 감는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덴젤 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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