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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25일 _ 김건태 루카 신부

작성자 : 김건태 작성일 : 2026-04-25 조회수 : 110

복음 저자 성 마르코

 


오늘 우리는 사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집필된 마르코 복음서의 저자 마르코를 기념합니다. 복음 저자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사도들을 비롯한 목격 증인들이 증언한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관한 전승들을 수집하여 각자의 신학적 설계에 따라 글로 남겨 놓은 사람들입니다.

 

마르코와 사도들과의 관계는 베드로로부터 시작됩니다. 사도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다가 천사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풀려났을 때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다,”(12,12) 하고 기록되어 있는 사실과, 사도 베드로가 마르코를 나의 아들”(1베드 5,13)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베드로와 마르코는 매우 가까운 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초대 교회 전승에 따르면(140년경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의 증언), 마르코는 사도 베드로의 대변인이자 통역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은 사도 바오로입니다. 바오로는 바르나바와 함께 예루살렘에 내려왔다가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을 데리고 안티오키아로 돌아갔으며(사도 12,25), 1차 선교여행을 시작할 때 그를 동반하기도 합니다(사도 13,5). 바오로의 2차 선교여행 때 마르코는 바르나바와 함께했던 것으로 보이며(사도 15,39), 끝으로 바오로가 로마에서 투옥되었을 때는 그와 함께 갇혀 있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콜로 4,10 참조).

 

마르코는 이처럼 베드로와 바오로, 어찌 보면 예수님의 증인들 가운데 대표적인 두 인물과 가까운 관계에 있었으며, 이 관계가 바로 마르코 복음서의 사도 전승적 권위를 보장해주는 토대가 될 것입니다.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마르코는 사도 베드로에 의해 이집트로 파견되어 그곳에 복음을 전했으며, 알렉산드리아에 교회를 세우고 초대 주교가 되었다고 합니다. 어느 부활 대축일에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던 마르코 주교는 이교도들의 습격으로 체포되어 밧줄에 목이 묶인 채 거리로 끌려다니다가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마르코의 유해는 828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상인들에 의해 알렉산드리아에서 베네치아로 옮겨졌으며, 이를 기념해 베네치아에 성 마르코 기념성당이 세워지고, 그곳에 성인의 유해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성서학자들의 일반적인 주장에 따르면, 마르코는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 그 밖의 목격증인들의 증언을 기초로 70년경 이교도 지역에서, 추정컨대 로마에서 복음서를 완성한 인물입니다. 이 시대가 박해시대였던 만큼, 마르코는 격심한 박해와 회의로 말미암아 몸부림쳐야 했던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복음서를 집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마르코가 힘주어 강조하는 신앙은 저항이나 투쟁을 통해 승리하는 신앙, 세상의 박해와 억압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마르 1,1)이심을 철저하게 믿어 고백하며 선포하는 신앙입니다.

 

우리는 더는 박해가 아니라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현실을 살고 있다 하더라도, 신앙에 대립되는 요소가 늘 외부로부터 오는 것만은 아님을 매일 체험하며 살아갑니다. 신앙과 불신이라는 양면을 동시에 안고 살아가는 우리 마음속에 이미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호 충동하는 마음속 생각들의 진가를 측정하기 위하여, 또는 그 생각들 가운데 어느 것에 최대의 가치를 부여해야 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하여 우리는 늘 복음의 빛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특히 사복음서 가운데에서 우리의 비위나 기호를 맞추어주는데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마르코 복음서야말로 우리를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데 가장 적절한 신앙의 양식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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