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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25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4-25 조회수 : 68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어느 서커스 공연 도중에 갑자기 정전되었습니다. 마침, 조련사가 호랑이 우리 안에서 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정전으로 칠흑 같은 어둠이 가득했기에 매우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 어둠에 익숙한 호랑이에게 공격당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이 다시 들어왔을 때, 사람들은 모두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조련사에게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기자가 물었습니다.

 

“호랑이들과 함께 우리 속에 있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요? 호랑이는 당신을 볼 수 있어도, 당신은 호랑이들을 볼 수 없었을 텐데요.”

 

조련사는 답했습니다.

 

“호랑이들은 내가 그들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기에, 저도 채찍을 휘두르며 하던 일을 계속했지요.”

 

우리도 하던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래야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바빠서, 힘들다는 이유로 하던 일을 멈추면 어떨까요? 당연히 믿음을 잃으면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게 됩니다.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지 못하면서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부활하신 예수님의 첫 명령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면, 철저히 ‘세상 밖으로’ 향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만의 구원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런 편협된 마음이 아니라 모든 이를 사랑하시고 구원의 길로 이끄시는 크신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주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이 믿음에 따르는 표징을,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마르 16,17.18)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술적 기적이나, 신앙심을 시험하기 위한 표시로 삼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창조 질서 회복이라는 강력한 종말론적 표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죄로 인해 파괴된 세상의 평화가 주님 안에서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제자들은 떠나갑니다. 그리고 곳곳에 복음을 선포합니다. 예수님께서 떠나신 것 같았지만, 오히려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이어지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던 일을 계속해야 함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뜻에 맞춰서 정상적으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주님의 뜻에 맞춰서 역동적으로 살고 있을까요? 혹시 주님의 부재를 말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정상적으로 살 수 없습니다.

 

 

오늘의 명언: 두려워하기보다 포용하십시오(쿠퍼 에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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