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4주간 월요일]
복음: 요한 10,11-18: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착한 목자”라 부르신다. 이 목자는 단순히 양들을 돌보는 사람이 아니라,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어놓는 분이시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11절)라고 말씀하시며, 십자가 위에서 성취될 사랑의 완성을 미리 보여 주신다.
예수님은 착한 목자를 삯꾼과 대비시켜 말씀하신다. 삯꾼은 양에 대한 사랑이 없고,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다가 위험이 닥치면 양을 버리고 도망간다. 그러나 착한 목자는 양을 알고, 양도 목자를 안다(14절).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 “그분은 ‘목숨을 준다.’고 하지 않고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고 하셨다. 이는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기꺼이 내어놓으심을 뜻한다.”(In Ioannem Hom. 59,3) 곧, 예수님의 희생은 강요된 것이 아니라, 사랑에서 비롯된 자유로운 헌신이었다.
예수님은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14절)라고 말씀하시며, 이 관계를 “아버지와 나의 관계”에 비유하신다. 이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사랑의 친밀한 일치를 뜻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그분을 알고, 그분은 은총을 통해 우리를 아신다.”(In Ioannem Tract. 45,3) 곧, 우리의 신앙 고백 안에서 주님을 알고, 주님의 은총 안에서 우리는 더욱 깊이 알려지고 사랑받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16절)라고 말씀하시며, 한 목자 안에서 한 양 떼를 이루는 보편적 구원의 뜻을 드러내신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모든 민족이 구원의 공동체 안에 불러들여 오리라는 약속이다. 성 치프리아노는 교회의 일치를 강조하며 이렇게 가르친다. “하느님은 한 분이시고, 그리스도도 한 분이시며, 교회는 하나이고, 신앙도 하나이며, 모든 백성을 견고한 몸의 일치로 모으신다.”(De unitate Ecclesiae 23) 착한 목자는 모든 양을 모아 일치된 공동체로 세우신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18절)라고 말씀하시며, 아버지께 받은 명령을 자유롭게 완수하신다. 교회 헌장은 이렇게 선언한다. “그리스도, 착한 목자는 당신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으시며, 그들을 하나의 양 떼로 모아 한 목자 아래 일치시키신다.”(6항) 곧, 십자가의 순명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사랑의 절정이며, 동시에 교회의 일치를 이루는 근원이 된다. 예수님은 착한 목자로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으셨다. 우리는 이 목자이신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따라야 한다. 때로 세상의 이리와 같은 위험이 우리를 위협할지라도, 착한 목자는 우리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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