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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5-06 조회수 : 59

요한 15,1-8   
 
머무는 것만큼 큰 활동은 없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요한 15,4) 
 
찬미 예수님! 부활 제5주간 수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참포도나무로, 우리를 가지로 비유하시며 단 하나의 명령을
내리십니다.
그것은 "가서 무엇을 하라"가 아니라, "내 안에 머물러라"입니다. 
 
복음서를 읽다 보면 종종 이런 의문이 듭니다. 세상은 1분 1초가 다르게 변하고, 우리는 생존을
위해 발버둥 쳐야 하는데, 주님은 왜 자꾸만 가만히 '머무르라'고만 하실까요? 무언가를 쟁취하려면 역동적으로 움직여야지, 나무에 붙어 가만히 머무는 것은 너무 수동적이고 게으른 태도가 아닐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우리의 착각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머무름'은 가만히 쉬는 수동적 상태가 아닙니다.
머무는 것만큼 힘든 활동은 없습니다.
그것은 우주에서 가장 격렬하고 역동적이며,
생존을 위해 내 생각을 완전히 부숴야 하는 가장 치열한 활동입니다. 
 
이 '머무름의 신비'를 완벽하게 증명해주는 우주 물리학의 개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정지궤도(Geostationary Orbit)'입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수많은 인공위성 중에서도 통신이나 기상을 담당하는 위성들은 지구에서 볼 때 항상 똑같은 자리에 가만히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들은 하늘 한가운데 둥둥 떠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주 물리학의 진실은 우리의 눈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이 위성이 지구의 한 지점 위에 완벽하게 머무르기 위해서는, 지상 3만 5천 킬로미터 상공에서 자전하는 지구의 속도와 정확히 똑같은 속도로 날아가야 합니다.
그 속도가 무려 시속 11,000킬로미터, 즉 1초에 3킬로미터를 날아가는 엄청난 초음속입니다. 만약 이 위성이 엔진을 끄고 진짜로 '가만히' 쉬어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중력에 이끌려 지구로 추락해 산산조각이 나거나,
우주 미아가 되어 영원히 사라져버립니다. 
 
우리의 눈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평화롭게 머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정지궤도 위성은 지구와의 완벽한 연결을 유지하기 위해 1초에 3킬로미터라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우주 공간을 질주하는 '가장 치열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머무름은 멈춤이 아닙니다.
대상과 완벽하게 속도를 맞추기 위한 초고속의 동기화 작업입니다.
(출처: 아서 C. 클라크, 『정지궤도 통신 위성의 원리』)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하십니다.
"나는 참포도나무다."
이 말은 "나는 여러 포도나무 중 하나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실패한 그 참 열매를 내가 맺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완전히 머무르신 분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예수님의 뜻이고, 아버지의 말씀이 예수님의 말씀이며, 아버지의 사랑이 예수님의 십자가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 붙어야 합니다.
옛 이스라엘이 계약을 잃어버려 들포도를 맺었다면, 새 이스라엘인 교회는 참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께 붙어야 참 열매를 맺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모습을 보십시오. 겉보기에는 그저 나른하게 매달려 바람을 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지의 내부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거대한 공장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가지는 나무와 떨어지지 않기 위해 매 순간 거센 바람의 저항을 견뎌내고, 중력을 거슬러 나무
기둥으로부터 수분과 양분을 필사적으로 빨아들이며, 광합성을 통해 에너지를 변환시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문다는 것은 내 안의 이기심과 싸우고, 밀려오는 세상의 유혹을 필사적으로 쳐내는 맹렬한 영적 투쟁입니다. 
이러한 '머무름이 곧 가장 위대한 활동이다'라는 진리를 증명하는 또 다른 생물학적 법칙이 있습니다.
바로 번데기(Chrysalis)의 법칙입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 고치를 틀고 번데기가 되면, 겉으로는 죽은 듯이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완벽한 머무름의 상태입니다.
하지만 생물학자들이 번데기 내부를 조사해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번데기 안에서 애벌레는 소화 효소를 분비해 자신의 몸 전체를 완전히 녹여버립니다.
형체조차 없는 영양 수프 상태가 됩니다.
그리고 그 수프 안에서 '상상 원반(Imaginal disc)'이라는 새로운 세포들이 미친 듯이 분열하며 나비의 날개와 다리를 조립해 냅니다. 
 
가장 조용히 머무는 그 시간 동안, 내부에서는 옛 자아를 완전히 해체하고 하느님의 본성(나비)으로 재창조되는 가장 맹렬한 활동이 폭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머무름은 옛 자아를 죽이는 피눈물 나는 작업입니다.
(출처: 리처드 도킨스, 『지상 최대의 쇼』) 
 
성경은 이 '머무름의 지난한 노력'을 구약의 탈출기 14장 홍해의 기적에서 명확히 보여줍니다.
뒤에서는 이집트의 전차 부대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죽일 듯이 달려오고, 앞에는 시퍼런 홍해 바다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생각과 본능을 꺾고 하느님의 대리자인 모세에게 온전히 머무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장 무기를 들고 싸우거나, 살기 위해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고 싶은 생존 본능이 솟구쳤을 것입니다.
"당장 무엇이라도 해보시오!"라며 원망하는 그들에게 하느님은 상식을 파괴하는 명령을 내리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꼼짝하지 말고 서서(Stand firm), 주님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이루실 구원을 보아라." (탈출 14,13)
인간의 눈에는 발버둥 치는 것이 생존 같았지만, 하느님은 "내 은총의 궤도 안에 가만히 머물러라"
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살갗을 찢는 듯한 두려움을 삼키고, 자신의 얄팍한 생각을 꺾은 채 모세의 말씀 안에 '머물렀을 때',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구원은 나의 행동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느님의 수액이 내 영혼을 관통하도록
나를 치열하게 묶어두는 '머무름'에서 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봅시다.
우리는 종종 본당에서 수많은 직책을 맡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땀을 흘려야만 하느님을 위해 큰일을 한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내 영혼이 성체대전에 고요히 머무는 시간 없이 겉으로만 바쁘게 움직인다면, 그것은 포도나무에서 잘려 나간 가지가 바닥에서 혼자 뒹굴며 먼지를 일으키는 것에 불과합니다.
기도할 시간이 없는 봉사라면 차라리 봉사를 하지 않고 성체조배하는 것이 더 큰 일을 하는 것입니다.
결국 내가 변하지 않는 신앙생활은 헛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교부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참된 종교』에서 이렇게 권고합니다.
"밖으로 나다니지 마십시오.
당신 자신 안으로 돌아가십시오.
내면의 중심에 진리이신 하느님이 머물고 계십니다.
당신이 그분 안에 머물기만 한다면, 멈춰 있는 당신의 발걸음이 이미 하늘 끝에 닿아 있을 것입니다."
(출처: 성 아우구스티누스, 『참된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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