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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13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5-13 조회수 : 66

복음: 요한 16,12-15 
 
한 마리 어여쁜 나비 같은 진리!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오시면, 그분이 우리를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신다고 하십니다. 
 
사전적 의미로 진리란? 조금 아리송합니다.
명제가 사실에 정확하게 들어맞음을 의미합니다.
또는 논리의 법칙에 모순되지 아니하는 바른 판단을 말합니다. 
 
그런에 진리가 그리스도교 신앙 안으로 들어오면 그 의미가 더 풍요로워집니다.
진리란 다름 아닌 예수님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겠지요.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곧 하느님이시라는 진리입니다.
그분은 아버지와 하나로서 그분으로부터 파견되신 분이라는 진리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뵙는 것이 곧 하느님을 뵙는 것이라는 진리, 그분 안에 하느님에 계신다는 진리입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분이라는 진리, 그분 손에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다는 진리, 그분은 모든 율법과 계명 전체를 수렴하고 완성하신다는 진리, 그분은 우리 인생의 최종 목표요,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는 이유라는 진리입니다. 
 
또 한 가지 생각할수록 눈물겹고 감사한 진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어떤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한 하느님이시라는 진리, 나를 끔찍이도 사랑하시고 챙기신다는 진리, 내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위해 언제나 노심초사하신다는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윤곽이 잡히지 않는 멀고 먼 당신이 아니라 내 안에 현존하시고 활동하신다는 진리,
오늘도 내 바로 등뒤에 서계시면서 나를 바라보시고 나와 함께 움직이신다는 진리, 내가 고통과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 때도 항상 나를 떠받치고 계신다는 진리입니다. 
 
결국 영원불변한 최종적인 진리는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진리입니다.
우리의 하느님, 그분과 하나이신 예수님이 진노하시고 징벌하시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이 세상 그 어떤 절친한 친구보다도 더 살갑고 다정다감하신 분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정체성에 대한 명확한 파악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그 어떤 환난과 시련 속에서도 잔잔한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결코 내게 호의적이지 않은 매일의 삶 속에서도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대자유를 만끽하며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진리는 웬만해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에 포착하기가 어렵습니다.
마치 산들바람 같습니다.
잘 보이지도 않고, 잡으려고 다가서면 도망가는 한 마리 나비 같습니다.
특히 우리가 세상사에 푹 빠져 살아간다면, 우리의 시선과 안테나가 오로지 돈이나 명예, 자리에만 쏠려있다면 진리를 찾기란 요원합니다. 
 
따지고 보니 진리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매일 동고동락하는 가족들이나 동료 인간들 안에 진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들 안에도 하느님께서 굳건히 현존하시니 그렇습니다.
때로 그들의 입을 통해 진리가 선포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천박한 물질만능주의, 경제 지상주의, 황금만능주의 문화 속에 깊이 빠져들어 살아가다 보니 진리고 뭐고 뒷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입만 열면 돈돈! 하고 외치다 보니 돈의 노예가 되어 진리와는 완전 담을 쌓고 살아가는 짐승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가 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생산력이 있든 없든, 건강하든 환자이든, 청춘이든 노인이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저 존재 자체로 주님께서 살아 숨 쉬는 성전으로 여기며 존중해드리고 배려해드리는 사람이야말로 진리에 도달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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