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마르 12,1-12: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포도밭과 주인, 소작인, 종들, 그리고 아들을 등장시키는 비유를 말씀하신다. 포도밭은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주인은 하느님이다. 주인은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맡기고 떠났지만, 소작인들은 주인의 뜻보다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다. 주인이 소출을 거두기 위해 보낸 종들은 매를 맞거나 죽임을 당한다. 마지막으로 아들까지 보냈지만, 그들은 아들마저 죽이고자 공모한다.
이 비유는 이스라엘의 역사이다. 비유 속의 주인은 소출을 거두기 위해 종들을 여러 차례 보낸다. 한두 번 거절당했을 때, 끝낼 수도 있었지만, 계속해서 기회를 주신다. 이는 하느님의 인내와 자비를 보여 준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인내를 통하여 죄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신다.” 하느님은 우리가 끊임없이 거부하고 저항해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새로운 기회를 주신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이 자비로운 인내 안에서 유지된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6절)라는 구절은 하느님의 자기 비움, 곧 케노시스를 보여 준다. 성 이레네오는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들을 통하여 인간에게 당신 자신을 주셨고, 인간이 더 이상 변명할 수 없도록 하셨다.”(Adversus Haereses IV,6,7 요약)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신 아들은 세상에서 “내버린 돌”이었지만, 부활로써 “머릿돌”이 되셨다. 세상은 힘과 영광을 추구하지만, 하느님은 버림과 죽음을 통해 구원을 이루셨다. 이것이 십자가의 역설이다.
소작인들의 죄는 단순히 탐욕 때문만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를 배신한 것이다. 포도밭은 사실 주인의 것이었지만, 그들은 자기 소유로 삼았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과 재능, 시간과 은총은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그것을 내 것이라 착각하고, 하느님께 돌려드리기를 거부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한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기 뜻을 좇는 자는 외형은 번성하는 듯 보이나 결국 스스로 무너진다.”
우리에게 맡겨진 삶은 하느님의 포도밭이다. 우리는 단순한 관리인이자 집사다. 바오로 사도는 말한다. “누구든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시종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무릇 관리인에게 요구되는 바는 그가 성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1코린 4,1-2)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포도밭에 부름을 받은 소작인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머릿돌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충실히 열매를 맺는 포도밭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 그때 우리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참여하는 참된 백성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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