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마르 12,18-27: “산 이들의 하느님”
오늘 복음에서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부활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한다. 그들은 신명 25장에 근거해서, 형제 중 한 사람이 죽으면 남은 형제가 그의 아내를 취해야 하는 법을 들어, 부활이 있다면 결혼 문제는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24절)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25절)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부활을 통해 하느님이 죽은 자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들의 신이심을 확증하신다.(탈출 3,6) 부활은 단순히 죽은 육체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영원히 생명을 누리는 존재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천국에서는 더 이상 죽음과 결혼 같은 육체적 필요가 없으며,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인간의 참된 생명은 하느님 안에서만 존재하며, 죽음은 육체적 삶의 한계일 뿐, 하느님과의 일치 안에서 우리는 영원히 살아 있다.”라고 해석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부활한 존재는 천사와 같이 되며, 세상의 결혼과 육체적 관계에서 벗어나, 하느님과의 친밀함 속에서 진정한 생명을 누린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가장 큰 영광은 하느님 안에서 살아 있는 것이다. 교회의 전통적 해석에서도, 부활의 약속은 인간이 하느님 안에서 참된 의미로 “살아 있음”을 확증하는 사건으로 이해한다. 육체적 죽음이 끝이 아니며, 오히려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삶이 열린다.
우리는 이제 단순히 생물학적 생명이 아니라, 하느님 뜻에 순종하고 사랑 안에서 행동하는 삶이 참된 삶이다. 우리가 욕심, 죄, 세속적 집착에 얽매이면 영적으로 죽은 자와 다름없다. 그러므로 현재의 삶 속에서 하느님과 연합하며, 모든 행동과 선택을 그분의 뜻에 맞추어 살아야 할 것이다. 성 바실리오도 말하듯, “인간이 살아 있을 때 하느님 안에서 살아야 한다.”(De Spiritu Sancto, 9,17 요약)는 원칙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 신앙적·영적 생명을 강조한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살아 있는 존재인가, 아니면 세속적 집착과 무지 속에 영적으로 죽어 있는가? 우리의 선택과 삶이 하느님께 속하고, 그분의 뜻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부활의 약속 안에서, 지금, 이 순간 하느님 안에서 살아 있는 우리가 되도록 마음을 새롭게 하고, 세상 속에서도 하느님께 충실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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