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것 모두
오늘 복음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성경은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그러운 사람들로, 부자들은 늘 인색한 사람들로 평가한다는 주장은 정말 경계해야 할 역설에 불과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부유하면서도 너그러운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가난하면서도 인색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오만과 불의에 젖어 있던 율법 학자들을 앞서 강력하게 비난하신 다음, 오늘 예수님이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의 너그러운 행위를 예찬하고 계신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의도는 분명해 보입니다. 율법 학자들의 위선적인 행위를 웅변적으로 질타하시며, 제자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시기 위함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먼저 많은 부자들이 큰 돈을 넣는 것을 보시며, 이어서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렙톤 두 닢을 넣는 것도 보십니다. ‘렙톤’은 그리스 동전으로서, 하루 품삯의 1/150에 해당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었으니, 정말 얼마 안 되는 액수였습니다. 부자들의 ‘풍족한 가운데서의 큰 돈’과 가난한 과부의 ‘궁핍한 가운데서의 작은 돈’이 대조를 이루는 현실을 목격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은” 부자들의 ‘큰 돈’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궁핍한 가운데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은” 과부의 ‘작은 돈’에 대해서는 높이 치하하십니다. 물론 예수님은 이러한 목격담을 통해서 진정한 헌금 또는 증여 정신을 가르치고자 하신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생각을 좀 더 넓혀야 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적대 세력으로 복음서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집단이 바로 율법 학자들입니다. 예수님 시대 유다교 회당은 희생 제물을 바치지 않고 성경을 해설하는 회당이었기에, 율법 학자들이 사제들보다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고, 이들은 백성들로부터 통상 ‘랍비’(선생님)라는 존칭으로 불렸습니다(마태 26,25.40.; 요한 1,38). 예수님도 그들의 식견을 인정하시고(마태 13,52), 그들과 자주 논쟁을 벌이십니다.
율법에 관한 것이라면 풍족함을 자랑했으나 실천에는 굼뜨거나 인색했던 율법 학자들, 율법 해석과 편찬에 관한 일을 맡고 있었기에 때로는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았던”(마태 23,4 참조) 율법 학자들, 예수님이 보시기에 하느님의 참된 부르심에 따르지 않고 부질없이 전통에 집착해 율법의 지엽적인 문제들에만 매달리고 그 본래 정신을 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으니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가진 것을 다 바쳐, 다시 말해서 말하는 대로 먼저 실천에 옮기고, 아는 대로 서슴지 않고 실행하며, 믿는 대로 꾸밈없이 솔선수범해야 함에도, 오히려 그 반대의 모습을 자랑하고 설쳤던 율법 학자들의 겉꾸미는 모습은 우리가 마땅히 경계해야 할 모습입니다.
오늘 하루,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웃들, 특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다가서, 하느님의 너그러움을 그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힘쓰는, 보람 있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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