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6일 [연중 제9주간 토요일]
복음: 마르 12,38-44: 과부의 헌금
오늘 복음은 두 장면을 보여 준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위선적 율법 학자들을 책망하신다. 그들은 긴 옷을 입고 다니며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회당과 잔치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길 원했다. 겉으로는 경건을 가장하지만, 실제로는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는다.”(40절)라고 말씀하신다. 둘째, 그와 대조적으로 성전의 헌금 궤 앞에서 가난한 과부의 작은 봉헌을 칭찬하신다. 많은 이들이 큰돈을 넣었지만, 과부는 생활비 전부인 렙톤 두 닢을 봉헌했다. 예수님은 그 봉헌이 가장 크다고 선언하신다.
예수님께서는 과부가 넣은 돈의 양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겨드린 마음을 보셨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은 우리가 바치는 것의 크기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의 깊이를 보신다.” 참된 봉헌은 의무감이나 체면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자기 전부의 내어줌이다.
이 과부의 봉헌은 예수님의 자기 봉헌을 예표 한다. 과부는 가진 모든 것을 다 내어주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목숨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셨다. 오리게네스는 “이 과부 안에서 우리는 가난하였지만, 우리를 부유하게 하신 그리스도를 본다.”라고 해석했다. 그녀의 작은 동전 두 닢은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두 손과 두 발의 상처와도 같이, 사랑의 절정에서 드려진 봉헌의 표지다.
이 과부의 태도는 우리 신앙생활에 중요한 기준이 된다. 신앙은 보여 주기 위한 겉꾸밈이 아니다. 겉으로 경건한 모습에 머물고 이웃을 착취하는 율법 학자들의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도 경고가 된다. 가진 것이 많든 적든, 우리가 드리는 기도·시간·정성·재물은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어야 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사랑이 없는 봉헌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나 사랑 안에서 드려지는 작은 봉헌은 하늘을 움직인다.”라고 했다.
우리가 바치는 것은 단순히 헌금이나 물질만이 아니다. 내 시간, 내 재능, 내 노고, 내 고통까지도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가’가 아니라, ‘나 자신을 얼마나 내어드렸는가?’이다. 과부가 생활비 전부를 내어놓았듯이, 우리도 자기 삶 전체를 하느님께 드릴 때, 그분의 은총은 충만히 우리 안에서 역사한다. 오늘 복음의 가난한 과부는 그리스도인의 참된 봉헌의 모범이다. 그녀는 가진 것이 적었지만, 하느님께 전부를 내어놓았다. 이는 예수님이 당신을 완전히 봉헌하신 모습과 같다. 겉치레 신앙을 버리고, 사랑 안에서 내어놓는 마음으로, 주님의 뜻에 따라 전 존재를 봉헌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초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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