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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8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6-08 조회수 : 41

복음: 마태 5,1-12: 참 행복 
 
오늘 우리는 산 위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교부들은 이 장면을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과 연결해 이해했다. 모세가 돌판에 새겨진 율법을 받았다면,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새 율법, 곧 사랑과 은총의 법을 선포하신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 “그분은 율법을 파괴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은총으로 완성하러 오셨다. 산 위에서 선포된 참 행복은 하늘 나라의 시민권을 주는 헌법이다.” 
 
참 행복은 단순한 윤리적 권고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 자체이다. 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참 행복은 예수님의 얼굴을 묘사하며, 동시에 그분의 제자들의 삶을 드러낸다.”(1717항) 다시 말해, 참 행복은 하느님의 아드님을 닮아가는 길이자,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모습(창세 1,27)을 회복해 나가는 길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산상설교에서 참 행복이 서로 단계를 이루며, 그리스도인을 성숙으로 인도한다고 설명한다. “가난함은 출발이고, 마음의 깨끗함은 정점이며, 하느님을 뵙는 지복은 완성이다.” 
 
세상은 부유함, 권력, 성공을 복이라 하지만, 주님은 그 반대의 사람들이 복되다 하신다. 이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진리를 드러내는 선언이다. 성 바실리오는 이렇게 가르친다. “부자는 가진 것을 나누지 않으면 불행하고, 가난한 이는 하느님만을 희망으로 삼을 때 복되다.” 이처럼 참 행복은 세상의 논리를 뒤집는다. 가난한 이는 하느님께 희망을 두기에 자유롭고, 온유한 이는 폭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정의에 자신을 맡기며, 의로움 때문에 박해받는 이는 십자가의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룬다. 
 
참 행복은 결국 예수님의 삶을 그대로 비추고 있다. ★“가난한 이”: 구유에서 태어나시고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비우신 주님, ★“슬퍼하는 이”: 인류의 죄와 고통을 짊어지신 주님, ★“온유한 이”: 자신을 박해하는 이들에게조차 용서와 사랑을 베푸신 주님, ★“의로움 때문에 박해받는 이”: 아버지 뜻에 충실하시다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주님을 말한다. 
 
참 행복은 결국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초대이다. 닛사의 성 그레고리오는 말한다. “참 행복을 사는 이는 그리스도를 자신의 삶에 새기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참된 행복이다.” 참 행복은 “예수님의 얼굴”이자 “그리스도인의 소명”이다. 교부들의 해석처럼, 우리는 이 말씀을 하나하나 계단처럼 오르며 하느님과의 친교에 나아가야 하겠다. 오늘 우리 각자가 세상의 행복이 아닌, 주님께서 선포하신 참된 행복을 선택하는 은총을 청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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