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폭력
어제의 복음 말씀에서 확인했듯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어 먹는 행위를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다섯 번째 규정인) 타작 행위 또는 (여섯 번째 규정인) 곡식 등을 까부는 행위로 확대해석하여 이의를 제기했던 바리사이들을 겨냥해,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말문을 막아버렸던 예수님에 대한 이들의 지질한 반응은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하는 일”이었습니다. 안식일법을 비롯한 율법 전반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일을 전문으로 하여 사람들로부터 상당한 권위와 함께 존경을 받고 있었고, 그 덕에 삶의 의미를 즐기고 있었던 이들에게 예수님의 존재와 가르침은 하나의 위협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없애버리는 일’, 곧 ‘폭력’이었습니다.
적대자들의 폭력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빌려, 당신은 “다투지도 소리치지도 않으시는 분”,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분”, 끝내 “민족들이 당신의 이름에 희망을 거는 분”임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신구약성경을 아무리 읽어 보아도, 당신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느님이 파견하신 사람들 가운데 폭력적인 존재는 보이지 않습니다. 온화하고 관대한 존재들뿐입니다. 분명 힘은 있으나, 학대하고 억압하고 파괴하기 위해서 자기 힘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참을성이 있고 고통을 받아들이며, 상처를 수용할 줄 압니다. 그의 놀라운 힘은 사랑하고 이해하고 베풀고 용서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끌었던 존재 가운데 으뜸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타인의 생명을 위협하지 않고, 오히려 당신의 생명을 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분을 지켜보아야 하고, 그분에게 우리의 희망을 걸어놓아야 하며, 그분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과 인류를 구원하는 진정한 구원자의 모습임을 배워야 합니다.
세상은 날로 폭력의 도를 더해 가고 있습니다. 평화를 유지하고 억눌린 자들을 해방하며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인권을 돌려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윤리적이든 물리적이든 폭력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만 가는 것 같습니다. 불행하게도 방향을 잘못 잡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애처롭게도 잘못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폭력은 폭력만을 낳는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없애버려야 할 것은 바로 폭력입니다. 사랑과 인내와 선함으로 폭력을 파괴시켜야 합니다. 선으로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온화함과 관대함이 인간 사이의 관계를 지배할 수 있도록 우리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야 합니다. 폭력이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요소는 바로 이 힘이며,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힘은 온화함과 관대함, 곧 사랑입니다. 폭력은 힘이 없거나 자신감이 없는 사람들이 즐겨 애용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사랑은 우리를 또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생명으로, 폭력은 죽음으로 이끌어갑니다. 이웃을 폭력으로 죽음에 부치고자 애쓰는 만큼, 그 죽음은 그대로 우리의 몫이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오늘 하루, 남들의 눈에 그것이 손해를 보는 것 같고 바보 같은 행동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주님의 뜻이며 길임을 확신하며, 자신감 넘치는 신앙인으로 당당하게 그 길을 걸어나가는, 의미 있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