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뿌리는 사람과 뿌려진 씨
예수님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대하여 설명하시지만, 씨뿌리는 사람은 분명 ‘사람의 아들’이라 하더라도, 모든 관심은 “뿌려진 씨”에 쏠려 있습니다. 우리는 어렵지 않게 이 씨가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임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말씀은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밝혀주고, 이 말씀을 받아들이는 정도와 수준에 따라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하느님 나라를 사람들 한가운데에 자리하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유의 초점은 말씀 자체 또는 말씀의 내용이 아니라, 말씀이 뿌려진 다양한 토양으로 소개되는 청중의 자세에 맞춰져 있습니다. 말씀을 받아들이는 청중의 자세에 따라 그 결과가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씨 뿌리는 사람과 이 사람이 뿌리는 씨에는 다름이 없습니다. 동일합니다. 다만, 씨가 뿌려진 토양이 서로 다른 결과를 내놓을 뿐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씨는 질 좋은 씨이며, 씨 뿌리는 이는 사람들에 대해 편견을 갖거나 차별하지 않는 관대한 사람임을 전제하십니다. 따라서 수확에 관한 모든 문제는 전적으로 씨를 받아들이는 토양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그러나, 엊그제 말씀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이 비유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특별히 강조하고자 하시는 내용이 마지막 구절에 담겨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끝내 좋은 땅에 떨어진 씨들이 백 배 또는 예순 배 또는 서른 배의 결실을 냄으로써 씨 뿌리는 사람은 수확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길과 돌밭과 가시덤불이라는 부정적 공간에서 아무런 성과 없음을 체험했다 하더라도, 좋은 땅에서 거둔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라는 세 번의 놀라운 결실이 세 번의 성과 없음을 충분히 보상해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씨 뿌리는 사람’, 곧 예수님은 부정적인 현실 앞에서 좌절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이 받아들여지고 결실을 보는 데 이러저러한 장애물들로 말미암아 오랜 시간이 필요함을 잘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메시지가 수용되지 않은 채 허공에 울려 퍼지고 있는 현실을 잘 알고 계시면서도, 믿음과 희망을 놓지 않으십니다. 씨앗은 싹을 틔울 것이며 언젠가는 놀라울 정도의 열매를 맺게 되리라는 믿음과 희망 말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과 함께 우리는 먼저 우리가 살아온, 또는 지금 살고 있는 신앙의 시간들을 돌이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씨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굳어버린 ‘길’과 같았던 시간들,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외부의 조건에 좌우되고 만 ‘돌밭’과 같았던 시간들, 세상의 일 앞에 숨이 막혀버린 ‘가시덤불’과 같았던 시간들을 정리하고서, 내 마음이 이제 많은 열매를 맺는 ‘좋은 땅’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새롭게 시작할 때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하는 대상이 ‘길’과 ‘돌밭’과 ‘가시덤불’과 같은 마음의 소유자들이라 하더라도, 주님은 분명 그들을 ‘좋은 땅’으로 만들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이끌어가신다는 믿음과 희망을 간직하며, 말씀 선포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 하느님의 말씀 앞에 선 우리의 마음을 다시금 점검해보고, 선교의 대상이 어떠한 처지에 있든 그곳에 씨 뿌리기를 마다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말씀 실천과 선포에 소홀함이 없는, 보람 있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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