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복음: 마태 17,14-20: 믿음은 불가능한 것이 없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를 치유하는 권능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마태 10,1 참조), 간질병으로 고생하는 소년을 치유하지 못했다. 예수님은 그 원인을 “믿음 없음”이라 지적하시며,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너희가 못 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20절)라고 하신다. 여기서 믿음은 단순한 심리적 확신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일치 안에서 드러나는 신뢰와 의탁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설명한다. “믿음은 단순히 말이 아니라, 기도와 단식으로 정화된 마음이 하느님께 완전히 의탁할 때 비로소 능력을 드러낸다.”(n Matthaeum Homilia LVII 요약) 즉, 믿음은 지식이나 외적 권능의 문제가 아니라, 내적 겸손과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의탁의 문제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겨자씨는 작지만, 땅에 떨어져 죽을 때 큰 나무로 자라난다(마태 13,31-32). 이는 믿음의 생명력이 비록 작게 시작되더라도, 하느님께 뿌리내릴 때 엄청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가리킨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믿음을 씨앗에 비유하며 이렇게 말한다. “믿음은 겨자씨와 같다. 그것이 작아 보이지만, 사랑의 불로 태워질 때 열매 맺고 성장한다.”(Sermones 요약) 따라서 믿음은 우리 안에서 자라나도록 기도와 사랑, 단식과 희생으로 양육해야 한다.
마르코 복음에서 예수님은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9,29)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기도는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의탁을, 단식은 자기중심적 욕망을 버리는 행위를 뜻한다. 교리서는 “유혹을 이기려면 기도와 절제가 필요하다. 기도는 마음을 하느님께 들어 올리고, 단식은 우리의 욕심을 낮춘다.”(540, 1434항 참조)라고 가르친다. 즉, 악을 몰아내는 힘은 하느님과 깊이 연결된 삶에서 나오는 것이다.
복음에서 간질병 환자의 아버지는 아들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주님께 간청한다. 이는 믿음의 공동체적 차원을 보여 준다. 성 이레네오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과의 일치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일치를 낳는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이들은 서로를 형제로 사랑하게 된다.”(Adversus Haereses, IV 요약) 하느님과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다른 이의 고통과 문제에 더 민감해지고, 그들의 짐을 함께 지려는 마음으로 나아가게 된다.
오늘날 우리도 제자들과 같은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다. 가정 문제, 사회적 불의, 개인의 고통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에게 겨자씨만한 믿음과 진실한 기도가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희망을 준다. 우리가 겨자씨 같은 믿음을 지니고, 기도와 단식으로 주님께 의탁할 때,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과 욕심이라는 “마귀”가 물러가고, 세상을 새롭게 하는 하느님의 능력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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