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처녀의 비유
산상설교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은 슬기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을 비교하여 비유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단단한 반석 위에 집을 지었고, 다른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었습니다. 오늘 ‘열 처녀의 비유’에서도 우리는 거의 동일한 대조, 기름을 준비하고 있던 슬기로운 처녀와 그렇지 못한 다른 처녀들을 만납니다. 달리 말한다면, 복음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슬기로운 사람이며, 복음 말씀을 듣기는 하나 그에 따른 행동을 보여주지 못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임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먼저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처녀들은 혼인 잔치에 초대된 사람들, 더욱이 잔칫집에서 신랑을 마중하러 나갔다가 신랑을 맞이하여 함께 돌아오는 의식에 참여할 자격이 부여되었던 사람들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야기는 더할 나위 없이 상식적이며 논리적이어서, 해설을 위해 고심하거나 무언인가를 덧붙일 필요가 없어 보이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신앙의 차원에서 본다면, 더욱 그러합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신랑이 누구인지, 슬기롭거나 어리석은 처녀들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인지, 혼인 잔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닫힌 문이 상징하는 공포감이 어느 정도일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유사한 예수님의 비유 말씀들이 말하는. 또는 되풀이하는 메시지는 거의 동일합니다. 반석 위에 지은 집(7,24-27),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하객이 갖추어야 할 예복(22,1-14) 등의 비유가 주는 메시지가 그러합니다. 한 마디로, 신앙을 실천에 옮기는 삶만이 보상의 대상이 될 것이며, 영원한 행복을 선물 받을 수 있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또 다른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면, 각 개인이 원하는 바를 행하는 것은 전적으로 각자의 자유 의지 문제이며, 그에 대한 책임 역시 온전히 각자의 몫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릇에 기름을 준비하지 않아 신랑을 마중하러 나가지 못한 것도, 혼인 잔칫집이 문이 닫혀버린 것 모두 잔치에 초대된 각자의 책임 문제라는 점입니다.
우리 모두 혼인 잔치에 초대되었다는 확신은 그 자체로 기분 좋은 일이며, 희망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확신은 안전보장이라는 세속적인 장치 속에 안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헛된 꿈으로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종말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가운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러한 헛된 꿈을 경계할 것을 촉구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에 대한 꿈은 늘 간직하되, 이 꿈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준비에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십니다. 신랑이 언제 오실지 모르니, 언제나 깨어 기다려야 하며, 언제든지 그분을 영접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과 함께 우리는 우리 모두 ‘구원’이라는 혼인 잔치에 은혜로이 초대되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새기고 감사하며, 초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신랑을 맞이할 준비, 특히 ‘기름’으로 상징되는 기도, 사랑 실천 등 행동하는 신앙인의 모습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그릇에 담을 기름을 열심히 준비하여, 주님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기 위한, 뜻깊은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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