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마르6,25)
'불의 앞에 침묵하는 것은 죄(罪)!'
오늘 복음(마태25,1-13)은 '세례자 요한의 죽음이 전해지는 말씀'입니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11,11)는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에 앞서 파견되어, 예수님께서 오시는 길을 닦고 준비한 참으로 위대한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입니다.
오늘은 세례자 요한의 죽음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불의 앞에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정의를 외치다가 헤로데의 칼에 의해 순교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당시 절대 권력이었던 헤로데가 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아내로 차지하는 불의를 지적했습니다.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마르6,18)
그 결과가 죽음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렇게 정의를 외치다가 순교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도 사람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느님의 정의를 외치다가 박해자들의 손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게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잘못한 것을 잘못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불의나 잘못을 보고도 침묵하는 것은 죄(罪)라고 생각합니다.
불의를 따라가지 말고, 하느님의 정의를 따라갑시다!
불의와 정의를 분별하는 기준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의 가르침입니다. 그분의 말씀입니다.
그 기준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들은 늘 말씀을, 특히 복음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정의를 이 땅에서 실현해야 할 소명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공동선(공동이익)이라는 하느님의 정의가 있습니다.
인간은 물론이고, 하느님께서 존재하게 한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들이 함께 더불어 잘 살게 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공동선(공동이익)의 원리입니다.
이런 하느님의 정의 앞에 불의가 놓여져 있습니다.
그 한 모습이 바로 '양극화의 문제'입니다.
21세기 양극화의 모습을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렇게 지적하셨습니다.
"한쪽에서는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음식이 버려지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더 이상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이는 사회적 불평등입니다."(복음의 기쁨, 53항)
세례자 요한처럼 불의에 맞서 하느님의 정의를 이 세상에 외치는 하느님의 참 신자들이 됩시다!
이념이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그리고 물질만능주의와 같은 세상 가치에 매몰되지 말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참 그리스도인들이 됩시다!
(~ 애가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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