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웃?
“누가 내 이웃인가?” 하는 문제는 인간관계를 형성해 나가면서 늘 마음에 담고 풀어내야 할 숙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바로 이 뜨거운 문제를 중심으로, 우리의 고정 관념을 뛰어넘는, 예수님의 전혀 새로운 가르침이 펼쳐집니다. 오늘 예수님은 율법 교사 한 사람에게 매우 유의미하면서도 명료한 비유 이야기를 통해서 사랑 실천에 관한 감탄할만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율법 교사가 여쭙니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이 질문의 지향점을 돌려놓으십니다. 다시 말해서, ‘누가 내 이웃인가?’ 하는 문제에서 ‘나는 누구의 이웃인가?’ 하는 문제로 넘어가십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내가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 ‘나는 누구의 형제이며 자매인가?’ 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그 유명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이 비유 말씀에 등장하는 ‘사마리아 사람’! 역사적으로 보면, 북이스라엘 왕국의 수도였던 사마리아는, 기원전 8세기 말엽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멸망함과 아울러 그곳에 다른 민족들이 강제로 이주함으로써, 민족 혈통의 순수성에 문제가 제기되어 남유다 왕국의 유다인들로부터 이방인 지역으로 취급되기 시작했으며, 기원전 3세기에 와서 그 골은 더욱 깊어져 완전한 결별의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그 한 예로, 사마리아인들은 유다인들과는 달리 ‘성경’, 곧 우리의 ‘구약성경’으로 ‘모세 오경’만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특히 유다인들은 똑같은 하느님을 성도 예루살렘이 아니라 사마리아에서 예배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들을 순수하지 못한, ‘부정(不淨)한’ 집단, 상종해서는 안 되는 집단으로 치부하고 있던 터였습니다(요한 4,9 참조).
그런데 바로 그 ‘부정한’ 사마리아인이 멸시를 일삼던 유다인에게 다가옵니다. 이 사람은 상대방이 ‘정(淨)한’ 사람인지 아닌지, 동향 사람인지 아닌지, 벗인지 적대자인지, 고마움을 아는 사람인지 아닌지, 그 사람을 위해 시간과 금전을 얼마나 내주어야 하는지 등에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그저 ‘한 사람’을,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한 사람’을, 다른 사람이 아니라 지금 당장 나의 도움과 구조를 간절히 바라는 ‘한 사람’을 직시할 뿐입니다. 그러기에 심사숙고의 여지 없이 자연스럽게 행동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랑 실천은 이처럼 장소나 인물이나 소속 등과 같은 여타 상황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잡아주어야 할 손, 봉사를 요구하는 현장, 정신적이며 물리적인 도움이 꼭 필요한 상황, 되살려야 할 희망, 나누어야 할 기쁨이 있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서든지 실행되어야 하며, 바로 그곳에서 우리는 진정한 이웃을 만들고 만날 수 있으며, 그 이웃의 진정한 이웃이 될 수 있음을 배웁니다.
오늘 예수님의 비유 말씀 속에서, 이웃은 있는 존재가 아니라 찾는 존재, 찾아 만들어나가는 존재임을 터득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우리의 도움, 정신적이며 물리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가가 도움을 줄 때 비로소 우리는 거기서 주님이 일러주신 진정한 이웃 관계를 형성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여러 기회에 이미 도움을 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차일피일 미루어 왔던 사람들에게 다가가 화답하는 가운데, 좋은 이웃 관계, 곧 구원의 관계를 온 마음으로 체험하는, 은혜로운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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