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루카 10,25-37: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오늘 복음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단순히 선행을 장려하는 교훈에 머물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를 드러내는 강력한 복음적 상징을 품고 있다.
율법 교사의 질문은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25절)라는 실존적 질문에서 시작된다. 예수님은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26절)하고 되물으신다. 곧 하느님의 말씀을 아는 것과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 사이의 틈을 드러내신 것이다.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된 사람은 인류의 상처 입은 모습을 상징한다. 사제와 레위인은 율법과 제의적 제도를 대표한다. 그러나 그들은 죽어가는 이를 살려내지 못한다. 오직 사마리아인, 곧 배척받던 이방인으로 오신 예수님만이 그를 구원할 수 있다. 성 이레네오는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우리의 자비로운 사마리아인이 되셔서, 우리의 상처를 싸매고 당신 피와 성령의 기름으로 치유하셨다.”(Adversus Haereses, III,17,3 요약)라고 설명한다.
“기름과 포도주”(34절)는 교부들의 해석에 따르면 성사적 은총을 상징한다. 기름은 성령의 위로와 세례·견진의 은총을,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피가 담긴 성체의 신비를 떠올리게 한다. 강도 만난 사람을 자신의 노새에 태우고 여관으로 데려간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당신 교회 안으로 데려오셨음을 뜻한다. 여관 주인에게 맡기고 비용을 내신 것은 교회와 그 직무자들에게 돌봄을 위탁하셨음을 보여 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지막 말씀이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37절) 예수님은 단순히 비유를 들려주시는 데서 그치지 않으시고, 우리 각자에게 결단을 촉구하신다. 이웃은 단순히 피를 나눈 사람이나 같은 민족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이웃이 되어야 할 대상은 상처 입은 모든 사람,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 길가에 쓰러진 모든 형제자매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는 최고의 길이며, 그분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Hom. in Matthaeum, 50 요약)
오늘 주님은 우리가 “누가 내 이웃입니까?”(29절)라고 묻는 대신, 내가 누구에게 이웃이 되어 줄 것인가를 묻도록 이끌어 주신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뿐 아니라, 사회 속에서 외롭고 상처 입은 이들에게 다가가 “자비를 베푸는 이웃”이 될 때, 우리는 착한 사마리아인이신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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