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8일 부활 제4주간 화요일
(요한 10,22-30; 사도 11,19-26)
찬미 예수님!
제가 글을 하나 읽어드리겠습니다.
조용한 마음으로 들어보세요.
『한 사도가 말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성인이다: 다른 이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사실 그는 이 세상에서만 살지 않는다;
오래 전부터 그의 마음은 하늘에서 숨 쉰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겸손하고 인내심 있으며, 순결하고 열심하며, 자비롭고 정직해야만 한다.
세속적인 그리스도인, 너는 우리와 관계없다!
너는 그리스도인?...
그러나 가라, 다른 곳에서나 그것을 이야기하러 가라!
참된 그리스도인은 착하신 하느님을 사랑한다.
네가 죄를 짓는다면, 네가 하느님을 경멸하기까지 한다면,
네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미 너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로마로부터 파리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길 위에,
너보다 더 뻔뻔스러운 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너는 거짓말쟁이다!
너는 그리스도인?...
그러나 가라, 다른 곳에서나 그것을 이야기하러 가라!
거만한 공작, 너는 영예 외에는 찾지 않는구나!
욕심 많은 동물, 너는 항상 풍요롭게 해주는 것을 바라는구나!
너는 말한다.
뱀이 누군가를 자극하는 것처럼,
무례하게, 성난 사자처럼,
진흙으로 배부른 개구리처럼,
싸움의 열망으로 가득찬 히드라처럼,
독사처럼 너는 너의 형제에게 퍼붓는다.
그의 가난함에 네가 귀머거리가 되어서는 안 되는데.
세속적인 그리스도인, 너는 우리와 관계없다!
너는 그리스도인?...
그러나 가라, 다른 곳에서나 그것을 이야기하러 가라.
만일 하느님의 소리가 네게 말할지라도, 너는 바다거북처럼 늦다.
그러나 네가 돈을 본다면... 그때 너는 모든 길에서 그것을 뒤쫓으려고 욕설을 한다.
선에는 느리고 정의를 행하게 하는 데는 피곤하고
너는 악에 준비되어 있고, 악습에 능하다.
누가 너를 인도하는 것이냐? 현재의 풍조, 유행.
너는 무엇을 위해 애쓰는가?
도처에서 그리고 항상, 보다 편하게 있기 위하여.
세속적인 그리스도인, 너는 우리와 관계없다!
너는 그리스도인?...
그러나 가라, 다른 곳에서나 그것을 이야기하러 가라!
복음에로 돌아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너를 겸손하고, 달콤하고, 인내심 있다고
보게 하는 데로 되돌아가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네가 우리와 관계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가라, 다른 곳에서나 그것을 이야기하러 가라!』
이 글의 제목은 무엇일까요?
“참된 그리스도인”입니다.
오늘이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마리아 사제 축일인데, 그분의 글입니다.
그런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독서에서 안티오키아 교회의 신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들었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어떤 마음으로 이 소식을 전하고 있을까요?
‘그리스도인’이란 이 단어를 엄청난 감격 속에서 말하고 있지 않을까요?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마리아 시대에도 그랬던 것 같은데,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란 소중한 이름을 너무도 무감각하게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주교’라는 이름은 직무의 이름이요 위험한 이름이지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은총의 이름이요 구원받을 이름이라고 하는데, 나에게도 그런가?
나에게도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이 은총의 이름이고 구원받을 이름인가? 하는 것을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달라”는 유다인들에게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하고 있는 일들 곧 예수님의 삶이 바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드러낸다는 말씀이지요.
오늘 나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정말 다른 무엇보다도 소중하다면, 나의 삶이 정말 ‘그리스도인’ 다운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나의 삶이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드러낼 수, 뿜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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