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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26일 연중 제17주일: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뿐!

작성자 : 최규화 작성일 : 2015-07-25 조회수 : 365

7월 26일 연중 제17주일

(요한 6,1-15; 2열왕 4,42-44; 에페 4,1-6)

찬미 예수님!

신학교에서 제가 사는 곳을 ‘애덕관’이라고 합니다.

사랑을 사는 곳이지요.

이곳에서 1년을 지내는 대학원 1학년 신학생들이 기도를 준비하며 그리고 기도한 내용을 실천하면서 하게 되는 일의 대부분은 이웃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애덕관’이라는 이름이 이곳에서의 삶의 내용과 너무도 잘 맞는다고 생각을 합니다.

애덕관 소성당에서 선풍기를 틀어놓고 기도하다 보니, 한 형제의 애덕이 떠오릅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소성당에 있는 선풍기를 들고 나갑니다.

왜 들고 나가냐고 물었더니, 선풍기가 소리가 너무 나서 자신의 방에 있는 선풍기와 바꿔 놓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형제들이 집중해서 기도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게 하려고 했던 것이지요.

오늘 독서와 복음의 말씀을 보면서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의 삶으로 다시 한 번 초대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1독서에서 엘리사는 어떤 사람이 가져온 보리빵 스무 개와 햇곡식 이삭을 백 명이나 되는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나누어 줍니다.

여기서 하느님은 굶주린 당신 백성을 먹이시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또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장정만도 오천 명쯤 되는 군중들을 먹이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아이가 가지고 있었던 것을 가지고 군중을 먹이시던 예수님은, 이제는 당신의 몸을 가지고 계속해서 우리를 먹이시지요.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을 하시기 전에, 당신이 하실 일을 이미 다 아시면서도 필립보에게 물으십니다.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필립보에게 하신 이 질문이 오늘 저에게는 ‘굶주린 이들을 먹이는데, 너도 뭔가 해야 하는 것 아니니?’ 하시는 예수님의 촉구로 들려옵니다.

저는 여기서 이렇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들은 무엇에 굶주려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주어야 하는가?’

제가 사제로 살아오면서 깨달을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뿐이다.

“사랑!”

주님께서 배고픈 군중을 먹이신 것도 사랑으로 그렇게 하신 것이고, 지금 당신의 몸을 내어주시는 것도 더 큰 사랑으로 그렇게 하시는 것이지요.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서에서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받은 부르심이란 사랑의 부르심입니다.

우리는 이미 성부, 성자, 성령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고, 이런 우리가 합당하게 살아가는 길은 사랑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한 주간 동안 우리가 받은 사랑을 한 번 살아보면 좋겠습니다.

커다랗고 기다렸다 해야 하는 것보다는 지금 당장 내 힘으로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사랑의 실천을 하는 게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신다면, 우리는 ‘할 수 없다’고, ‘불가능하다’고 응답하는 것이 아니라, ‘저는 이것을 하겠습니다. 부족하지만 저는 이것을 보태겠습니다.’ 하고 우리의 사랑을 적극적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을 살라’는 우리의 부르심을 잘 살아가는 한 주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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