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6일 부활 제2주간 수요일
(요한 3,16-21; 사도 5,17-26)
찬미 예수님!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었다.”
얼마나 사랑하면 이럴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의 어떤 노력에 대해서 그 보상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거꾸로 우리가 무언가를 보상받았다면 그건 우리가 무엇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당연시하는데 익숙해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서도 적용하고 싶어 하지만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이들은 이러한 잣대는 하느님의 우리게 대한 사랑에는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우리게 대한 사랑은 보상으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무상의 사랑이지요.
이 무상의 사랑 앞에 머무르는 이는 무언가 하고 싶은 마음이 솟아오르지요.
오늘 독서의 상황은 좀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감옥에 갇혀있는 사도들을 데리고 나와서 한다는 말씀이 “성전에 가서 생명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사도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잡힐 걸 뻔히 알면서도 다시 성전에 가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우리에 대한 너무나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맛본 이는 이렇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하느님을 너무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자신을 생각하기보다 하느님을 너무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하느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당신의 외아들을 주셨습니다.
이 사랑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그에 힘입어 그래도 무언가를 하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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