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17주간 토요일
(마태 14,1-12; 예레 16,11-16.24)
우리는 누구에게나 칭찬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특히 현대 사회는 칭찬받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굶주려 보일 때도 있습니다.
농담 삼아 상대에게 “너 관심받고 싶어서 그러지?”라는 말이 퍼지기도 하는데
여기서 관심도 상대가 나를 좋게 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내포되어있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에게 안좋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피하게 되었지요.
나를 지적하거나, 고민하게 하거나 나를 분란하게 하는 사람은 만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과 독서에서는 많은 이들이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를 한다는 이유로
주님께서 보낸 의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어째서 요한과 예레미야의 말에는 귀기울지 않지?”하며 그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의아하게 생각 하는분도 계시겠지만
만약 입장이 바뀌어 누군가가 우리에게 듣기 싫게 옳은 말만 계속한다고 생각하면 과연 그 말에 귀기울일 수 있을까요?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듣기 싫은 말을 하는 사람은 꼭 주님께서 보내신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내게 충고나 불편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거부하기 시작하면
동시에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에도 귀을 닫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항상 좋은말만 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획일적으로 모든 상황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충고와 불편한 말들을 다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그 중에선 사랑이 없이 비판하며 분열을 조장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지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달콤한 이야기에만 빠져 살다보면 주님께서 보내신 사람을 내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달콤한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힘이 나지 않고
나의 삶과 신앙도 기운을 잃어간다면 나를 꿰뚫는 말을 해주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그 안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오늘 성경에 나오는 주변 인물들이 예레미야나 요한을 배척한 것을 우리 그대로 답습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을 따른다면 그분의 쓴소리도 사랑에서 나왔음을 잊지말고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는 하루가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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