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게시판 > 보기

오늘의 묵상

10월 29일 연중 제 30주간 토요일(다해)

작성자 : 김민호 작성일 : 2016-10-29 조회수 : 323

연중 제 30주간 토요일(다해)

 

1독서 : 필리피 1,18~26

복 음 : 루카 14,1. 7~11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루카 14,11)

 

슬픈 영화를 보면 슬퍼서 죽을 뻔 했다고 말들 합니다. 어두운 골목에서 고양이 같은 게 갑자기 튀어 나와서 놀래 키면 간 떨어져 죽을 뻔 했다 말들 합니다. 생일이라 선물 받은 걸 지하철에서 잃어버리게 되면 속상해 죽겠다 말들 합니다. 미처 먹지 못한 음식이 상해서 먹지 못하게 되면 아까워 죽을 뻔했다 말들 합니다.

죽지도 못하고 죽을 뻔만 하는 세상. 단 한 번 제대로 죽을 때를 위해 이제는 죽겠다는 말을 아껴두면 좋겠습니다. 실제로 죽지도 못하면서 죽을 뻔만 하는 죽을 일로만 가득한 것처럼 단식도 절제도 극기도 습관처럼 하는 척만 하는 우리들이 아닌 가 반성해봅니다. 한번을 하더라도 제대로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한번을 살아도 제대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시대에도 때로는 지키기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복잡한 율법들이 있었습니다. 제일 엄격한 율법들은 안식일이나 단식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율법들을 지키지 않을 때가 자주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에게 있어서 더욱 중요한 것은 율법 자체가 아니라 이 율법을 가지고 하느님에게로 갈 수 있냐 없냐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에게로 가지 못하는 율법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율법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가 있는 것은 그 율법을 지키는 우리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율법을 지키는 척만 하는 우리들이 아닌지 되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교회가 말한다고 해서 교회에 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일날 성당에 나오지 않으면 죄가 된다니 성당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하느님을 뵈러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오늘 예수님이 이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야단쳤다고 해서 우리까지 그 사람들을 얕잡아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야단을 맞을 정도로 철저하게 규칙들을 지킨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일상생활에서 하찮게 생각하는 것들조차도 부지런히 지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식으로 얘기하자면 길거리에 휴지 조각 하나 버리지 않고 신호등이 아니면 길을 건너지도 않고 행여 조그마한 규칙을 어기게 되면 재를 뒤집어쓰고 하느님께 용서를 구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철저하게 자신을 절제하며 수련을 하던 이들 눈에 규칙을 넘어 자유스럽게 생활하는 예수님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해도 괜찮을 만큼 열심히 삶을 꾸려가는 바리사이파 사람들도 예수님에게 야단을 맞는 걸 보니 세상 대충 살아서는 나중에 예수님 근처에도 가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예수님처럼 자유스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바리사이파 같은 열심한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작정 규칙을 벗어버리기보다는 일단 규칙을 철저히 지키는 와중에 자유스러움은 그 다음 단계인 듯합니다.

내 삶이 어떤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편하기 위해서 규칙들을 내 마음대로 해석하고 어겨버리는 적은 없는지. 최소한 바리사이파 사람만큼이라도 세상을 살아 예수님에게 야단이라도 맞을 정도의 경지엔 올랐으면 합니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