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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18일 대림 제 4주일(가해)

작성자 : 김민호 작성일 : 2016-12-18 조회수 : 300

대림 제 4주일(가해)

1독서 : 이사야 7,10~14

2독서 : 로마서 1,1~7

복 음 : 마태오 1,18~24

제 목 : 요셉이 닮은 인간

어느 크리스마스에 일어난 일입니다. 똑똑한 아이들이 많은 교회에서 아이들끼리 선물을 교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정성스럽게 마련한 선물을 가운데에 쌓아놓고는 산타클로스가 한 사람씩 앞으로 불러내 그것을 뜯어보게 했습니다. 모두들 무슨 선물이 들었을까 궁금해 하며 포장 뜯는 걸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태어날 때부터 저능아인 아이도 거기에 앉아 있었습니다. 늘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곤 했던 이 아이도, 산타클로스만큼은 자기를 기억하리라 고대하고 앉아 기다렸습니다. 맨 끝에 가서야 산타클로스가 자기 이름을 불렀습니다. 산타클로스가 그 아이의 이름을 부르자 똑똑하다는 아이들이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습니다. 산타클로스는 커다란 상자를 건네주었습니다. 또 아이들이 웃었습니다. 상자의 뚜껑을 열어 보았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더 크게 났습니다. 그 안에는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누군가 이 아이를 놀려주려고 한 장난이었습니다.

아이는 그 상자를 거꾸로 뒤집어 흔들어보았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더 커졌습니다. 그래도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텅 빈 상자를 안고 바닥에 앉아 서럽게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똑똑한 아이들이 선물을 안고 큰소리로 웃으며 하나씩 밖으로 나갔습니다. 친구의 가슴엔 커다란 못을 박아놓고 말입니다.

또 다른 곳의 크리스마스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어리석게 보이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크리스마스에 변함없이 교회 주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자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그 소년 앞에 천 원짜리와 백 원짜리를 놓고는 아무 것이나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소년은 늘 그러던 대로 백 원짜리를 가져가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소년의 그 어리석은 행동을 보고 싶어서 자주 그런 제안을 했고, 이 소년은 그때마다 백 원짜리를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그 소년이 그렇게 어리석은 행동을 한 이유를 알게 된 똑똑한 어른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생각이 더 어리석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소년은 돈의 가치를 몰랐던 것이 아니고 자기가 만일 천 원짜리를 가지는 당연한 행동을 했다면 그런 놀이는 당장 끝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렇게 되면 사람들의 기쁨은 사라져버린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이 두 개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무얼 느끼게 해 줄까요? 똑똑하다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기보다는 상처를 쉽게 줍니다. 그리고 세상에 기쁨을 주기 위해 어리석음을 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세상에 기쁨을 주기 위해 어리석음을 택한 대표적인 사람이 요셉입니다. 요셉은 멍청했습니다. 요셉은 자신과 약혼한 마리아가 자기와 동침하지도 않고 아이를 잉태했는데도 꿈 한번 꾸고는 아무런 이의도 달지 않고 곧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바로 직전까지 요셉이 생각하기에 합리적이고 타당한 문제 해결방법인 드러내지 않고 남몰래 파혼하기로 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을 버리고, 이해하기 힘들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하느님의 요구에 순순히 따르는 모습은 보통 사람의 눈에 어리석게만 보입니다.

요셉은 똑똑함보다도 어리석음을 선택했습니다. 그로 인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게 되었습니다. 믿는 것이 힘든 사람들은 요셉의 순수함을 배워야 합니다. 이리 재고 저리 재어보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하느님의 뜻을 요셉처럼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신앙인은 이해타산과 세속적인 꾀를 쓰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인은 이웃의 고통과 슬픔을 보고 외면하거나, 할 일이 없으면서도 공연히 바쁜 체하지 않고, 슬퍼하는 사람과 함께 고통 앞에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탄절이라고 하면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대목보기에 바쁘고, 어떤 이들은 선물 준비하기에 바쁘며, 어떤 이들은 놀 계획에 바쁩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어디에 오셔야 할까요? 모두가 자기 이해타산과 자기 계획에 바빠서 동동거리니, 어린이처럼 순수한 마음을 찾는 주님께서는 갈 곳이 없게 된 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의 기준대로라면 요셉은 멍청하고 무능한 남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은 인간의 뜻보다 위대하고 옳습니다.

하느님은 요셉처럼 순수하게 믿고 행동할 때에만 또다시 이 세상에 탄생하십니다. 순수한 믿음만이 주님을 이 세상에 낳게 하는 길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요셉의 순명이 바로 인류 구원의 초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세속적인 이해타산 때문에 순수성을 잃고 산다면,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똑똑함을 버리고 순수한 신앙에서 우러나온 요셉의 어리석음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때에 비로소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는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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