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게시판 > 보기

오늘의 묵상

4월 30일 부활 제 3주일(가해)

작성자 : 김민호 작성일 : 2017-04-30 조회수 : 289

부활 제 3주일(가해)

 

1독서 : 사도행전 2,14.22~33

2독서 : 1베드로 1,17~21

복 음 : 루카 24,13~35

제 목 : 빵을 떼실 때에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한번 살펴보면, 먼저 제자들 두 사람이 나옵니다. 스승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이제 모든 것이 다 끝났다는 듯이 실망하면서 엠마오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엠마오라는 마을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이제 과거의 생활로 다시 돌아가려는 마음의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려는 인간의 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등장하시어 함께 걸어가십니다.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데도 불구하고 이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생각이 매여 있었기 때문이지요.

,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이 그들과 함께 걷는 예수님을 보지 못했을까요? , 그들이 성경을 설명하시는 그분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했을까요? , 그들은 빵을 떼어줄 때에야 비로소 그분을 알아볼 수 있었을까요? 어찌 보면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빵을 떼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위로의 말을 해도 세상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느끼지 못합니다. 빵을 나눌 때에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을 향해 빵을 나누고 있는지요? 함께 빵을 나누지 못하는 것은 인류가 모두 한 식구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식구가 굶주리고 있는데, 과연 빵을 나누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지금 이 지구상에는 아직도 굶어서 죽는 형제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나누어줄 빵은 과연 어디 있을까요? 혹시 우리가 버리는 있는 음식은 없는지요? 빵을 떼어 주실 때에야 비로소 그분을 알아보았다는 말씀이 자꾸 마음에 걸립니다.

 

빵을 함께 나눈다는 것은 바로 마음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도 되겠지요. 우리 중에 아파하고 있는 이웃, 고통 중에 있는 이웃과 함께 마음을 나누는 것, 그것이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는 증거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고통받는 이웃 앞에 중립이란 있을 수 없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나의 이웃, 형제, 자매들과의 관계 안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에게 열려 있는 마음, 공감하려는 마음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